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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범여권 중도론의 치명적 오류

그들의 ‘중도론’에 지갑을 열 대중은 없다
Politics / 2007 대선이야기

   
 
신당동 떡볶이 골목.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80년대에는 정말로 많은 젊은이들이 찾던 곳이다. 세월이 흘러 ‘그 때를 아십니까?’가 다시 방영된다면 나올 가능성이 제법 큰 추억의 거리다.
물론 나도 그 곳을 자주 갔다. 그런데 실로 유감스러운 것은 그 골목을 수십 번 넘게 갔으면서도 TV 광고에도 나온 그 유명한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를 끝내 먹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 할머니 가게와 마주 보고 있던 떡볶이 가게 ‘조가네’가 하필 친구네였던 탓이다. “맛은 다 똑같지”라고 친구는 말했지만 마복림 떡볶이를 먹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가 있나.
건너편 마복림 할머니 가게는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였다. 다른 가게들이 파리를 날려도 그 집만은 예외였다. 그곳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장사가 너무 잘 돼 그 옆 가게들은 마치 ‘삼성 거리’처럼 ‘마복림 거리’를 이루었다.
‘마복림 할머니 막내 아들네 집’은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름이다. 난 그때 알았다. 사람들은 떡볶이를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마복림 할머니’ 가게를 온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 식으로 표현하자면 ‘마복림’이라는 시뮬라크르를 통해 나도 거기에 갔다 왔다는 뿌듯함을 얻게 된다. 시뮬라시옹!(보드리야르의 개념에서 시뮬라크르는 현실보다 더욱 실제적인 가상을 뜻한다. 시뮬라시옹은 그런 가상이 실제보다 더욱 우월해지는 과정이다.) <편집자>

‘인식된 것이 실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장 보드리야르는 ‘가상과 실제’ 사이의 혼돈을 그린 영화 ‘매트릭스’에 영감을 불어 넣어준 철학자다.

그는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미국 전체가 사실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거기에 있다”고 통찰한 바 있다. 한국 영화에서 난무하는 폭력과 강간과 욕설은 ‘실제의 나라’ 한국 전체가 폭력과 강간과 욕설의 나라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과잉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놀랍게도 ‘가상’은 ‘실제’를 모사해내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럴 때에만 대중은 기꺼이 지갑을 열어 ‘소비’를 한다는 사실이다.

스타벅스(시뮬라크르)는 뉴요커가 된 듯한 기분(시뮬라시옹)을 제공한다. ‘된장녀’라고 아무리 비웃어도 그런 근사한 느낌에 단돈 4000원은 그야말로 껌값이다.

# 한나라당의 중도와 범여권의 중도
2007년 정치의 신상품이 나왔다. 중도다. 톱스타는 아니지만 그만하면 꽤나 유명한 배우들이 광고를 한다. 손학규, 정운찬…. 비슷한 제품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중도통합, 중도개혁, 중도실용…. 유행이 유행인지라 잘 나가는 대기업(?)에서도 이명박, 박근혜라는 톱스타들을 내세워 심플한 디자인의 ‘중도’를 시장에 내놓았다.

어느 쪽 상품이 잘 팔릴까? 주력 상품으로 내놓은 쪽(범여권)일까? 아니면 기획 상품으로 내놓은 쪽(한나라당)일까? 기획으로 한 번 내놓아 본 쪽이야 안 팔려도 그만이지만 주력 상품으로 내 놓은 쪽은 안 팔리면 회사가 도산할 수도 있다. 내 생각을 미리 밝히자면 유감스럽게도 범여권 도산 위험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근거가 있다. 그 전에 확인할 것이 있다. 중도의 실체는 그리 중요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중도는 가상(!)이지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중도라는 가상이 어떤 실제를 모사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도라는 시뮬라크르가 어떤 시뮬라시옹을 제공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결코 대중은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다.

‘세계화’라는 시뮬라크르는 ‘선진국’이라는 시뮬라시옹을 제공한다. 명심할 것이 있다. 정치는 사실의 게임의 아니라 인식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대중에게 인식된 것이 실제다. 김대업의 폭로가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중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대중은 언론이 아무리 자세히 보도하더라도(산업별 쟁점을 보기 좋게 몇 페이지에 걸쳐 도표로 만들어 주더라도) 한미 FTA의 실체에 접근하기 보다는 뭔지 모르지만 이제 대한민국도 세계와 당당히 경쟁할 정도로 커졌구나 하는 추상적 자긍심(시뮬라시옹)에 더 집착한다. 그런 점에서 범여권 주자들이 들고 나온 중도론은 포지셔닝 전략에서 몇 가지 치명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여권발(發) 중도론이 자칫하면 하나의 전선도 감당하기 힘든 역량으로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워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힘겨운 보수와의 전선에 더해 진보와의 전선도 새로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이것은 최악이다. 흔히 중도를 비아냥거릴 때 쓰는 ‘길 가운데 서 있으면 양 쪽에서 오는 차 모두에 치일 염려가 있다’는 말이 현실이 될 수 있다.

# 범여권 ‘중도론’의 뒷공간은 안전한가?
축구 시스템에는 ‘3백 시스템’과 ‘4백 시스템’이 있다. 흔히 3-5-2나 3-4-3 같은 경우는 3백 시스템이고 4-4-2나 4-3-3 같은 경우는 4백 시스템이다. 3백은 수비수를 3명 세우는 것이고 4백은 수비수를 4명 세우는 것이다. 선진 축구를 하는 팀들은 거의 대개가 4백 시스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비수를 4명이나 세우는 4백 시스템이 사실은 더 공격적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다.

3백은 3명 모두가 수비를 전담하고 공격할 때만 미드필드까지 압박을 위해 올라오지만 4백은 양 윙백이 공격 진영까지 과감히 치고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4백을 쓰기 위해서는 양 윙백의 체력이 뛰어나고 스피드가 좋아야 한다. 가장 많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거스 히딩크가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왔을 때, 한국은 국가대표만이 아니라 많은 팀들이 3백 시스템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는 낡은 시스템인 3백을 4백 시스템으로 전환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실패하고 결국 2002년 월드컵을 3백 시스템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4백 시스템을 구사하기에는 당시 수비의 주력이었던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 등이 나이가 너무 많아 체력과 스피드가 도저히 4백 시스템을 소화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억지로 4백으로 나선 평가전에서 한국 대표팀은 참패를 당했다. 어설프게 올라갔다가 체력과 스피드가 처지는 바람에 상대 공격수들에게 뒷 공간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 국가 대표팀이 당연히 4백 시스템을 구사한다. 이영표, 조원희, 송종국, 김동진 등 스피드와 체력이 있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범여권의 중도론은 2002년 한국의 국가 대표팀처럼 4백 시스템을 구사할 수 없는 전력으로 어설프게 4백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보라는 뒷 공간을 내주게 된다. 일심회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던 민주노동당이 다시 활기를 띠게 된 것도 여권이 스스로 진보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 틈을 타서 진보 진영은 두 개의 반(反)한미FTA 전선(반신자유주의 전선을 통해서는 한나라당과, 반자유주의 전선을 통해서는 여권)을 기회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반면 그동안 한나라당이나 이회창의 실패는 이영표, 조원희, 송종국 같은 젊고 패기 있는 4백 자원을 갖고 3백을 고수해 온 오류에서 찾을 수 있다.
한나라당은 자기들의 우측으로 장-마리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 국민전선 같은 극우 정당이 없기 때문에 과감히 중도로 이동해도 되는 것이다. 올라가도 뒷 공간이 안 열리기 때문이다. 내가 한나라당의 전략가라면 4백을, 여권의 전략가라면 3백을 구사할 것이다.

# 무엇을 위한 중도인가?
포지셔닝 전략과 관련해 흔히 언급되는 두 모델이 있다. 클린턴의 정치 컨설턴트인 딕 모리스가 구사한 이른바 공화당의 이슈를 뺏어오는 ‘중도선점 전략’과 부시의 정치 컨설턴트인 칼 로브가 구사한 이른바 ‘갈라치기 전략’이 그것이다.

이들의 전략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는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이들의 전략이 미국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서만 적용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과 또 하나는 딕 모리스의 중도 전략은 한국의 여권보다는 한나라당에 적용 가능한 전략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미국의 공화당은 한국의 여권과 비슷한 길을 걸어 왔고,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비슷한 길을 걸어 왔다. 따라서 미국 선거에서 배우려면 보수와 진보를 떠나 여권은 공화당에서, 한나라당은 민주당에서 배워야 한다. 딕 모리스가 구상했다고 알려진 중도 전략은 사실은 1984년 알 프롬이 만든 DLC(민주당지도자협의회)가 고안한 것이다. 80년대 레이건, 부시 정권을 거치면서 무력감에 빠진 민주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민주당 노선을 뛰어넘는 제3의 길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은 훗날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에게 영향을 미쳐 그가 블레어에게 제3의 길을 조언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자기가 쓴 ‘노동의 미래’에서 제3의 길은 미국 DLC에서 가져 온 것임을 솔직히 밝히기도 했다.
신(新)노선으로 집권한 클린턴이 다시 과거의 민주당 노선으로 회귀해 치른 94년 중간선거에서 패배를 겪고(당시 공화당은 깅그리치의 주도로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캠페인으로 승리한다) 다시 신노선을 강화해 재집권에 성공한 것이 ‘가치 아젠다’로 알려진 96년 대선이었다.
이것은 명백히 한나라당이 벤치마킹할 전략이지 여권이 벤치마킹할 전략은 아니다.
두 번째 오류는 한국에는 중도가 모사할 실체가 없다는 점이다. 극복할 아우라(!)가 없다면 중도는 팔리지 않을 것이다.

대체로 중도 노선이 필요한 상황에는 두 가지 모델이 있다. 유럽 모델과 미국 모델이다. 유럽 모델은 제3정당으로서의 중도노선이고, 미국 모델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선거전술로서의 중도 노선이다.
예컨대 영국에는 보수당과 노동당을 극복하려는 자민당이 있다. 독일에도 기민당과 사민당을 넘어서려는 자민당이 있다. 프랑스에는 이번 대선에 출마한 바이루의 프랑스민주동맹이 있다. 유럽의 이들 중도(자유주의) 정당은 제3정당론이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선거전술로서 중도노선이 고려된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이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도와 관련한 확실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확고히 자리잡은 보수와 진보의 실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있어야 변증법적으로 극복할 제3의 세력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중도는 무엇을 극복하려는 것일까?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친노와 반노? 미국과 북한? 아니면? 도대체 무엇을 극복하려는 것일까? 지금 할 일은 제대로 된 보수, 제대로 된 진보를 해보는 것이다. 그것도 과거의 개념이 아니라 세계화, 정보화의 흐름을 반영한 신보수, 신진보가 필요한 것이지 어설픈 중도가 필요한 때가 아니다.
세 번째 오류는 이슈 선점에서 마이너리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사거리에서 길을 묻는데 어떤 이들은 무조건 좌회전만 계속하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계속 우회전만 하면 된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계속 직진만 하라고 한다. 그렇지만 세상사가 어디 그런가? 좌회전해서 직진하다가 다시 좌회전해서 조금 가다가 우회전해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세계화, 정보화 된 세상에서 좌파정책으로 어떻게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또 세상만사가 다 우파정책만으로 해결되겠는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보수든 진보든 그렇게 외골수로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율법을 지키듯 이념을 절대시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안식일에 예수가 음식을 먹고 아픈 사람을 치료하자 율법을 근거로 비난했다. 그 때 예수가 말하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보수든 진보든 이념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이념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이다.
시장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시장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진보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진보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중도란 독립적인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보수의 정책을 때로는 진보의 정책을 유연하게 지지하는 합리적 선택을 말한다. 영국 보수당의 젊은 당수 데이비드 카메론이 내건 것처럼 보수당도 사회 경제적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와 관련한 모델도 두 가지가 있다.
손학규 모델과 홍준표 모델이다. 손학규는 햇볕정책의 계승 등 정치적 진보를 표방한다면 홍준표는 정치적으로는 보수를 견지하되 사회, 경제적 이슈에서 과감하게 진보적 정책을 내놓는다. 누가 더 성공할 것 같은가? 한국 대중의 요구를 고려할 때, 평화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슈 전략은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중도라는 시뮬라크르는 어떤 시뮬라시옹이 준비되어 있는가? 스타벅스는 뉴욕시민이 된 듯한 기분을 팔았지만 중도는 무엇을 팔 것인가? 대중의 소비시장은 트레이딩-업(상향구매)이나 트레이딩-다운(하향구매)이다. 가치가 있든지, 값이 싸든지 확실한 매력 하나는 있어야 대중이 지갑을 연다.

글 박성민 | 정치컨설팅 ‘민’ 대표 / 프레시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