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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집행역량 믿지만 민생개혁 요구 높다”

Politics | 2007 대선이야기 (이명박 후보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글 | 프레시안 남재희/언론인·전 노동부 장관>

거의 모든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지만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정당정치가 한 차원 높아진 것을 느꼈다. 특히 박근혜 씨가 간발의 차이로 패하는 아슬아슬함에 놀라며 깨끗이 승복하자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냈다. 큰 정치가가 되기엔 어딘지 부족한 데가 있지 않나 하고 느꼈던 많은 사람들이 그 의연한 승복연설을 듣고 부족한 부분이 채워졌다고 뿌듯해 했을 듯하다.
경선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오랜 기간 계속된 그 열기 속에서 국민들은 대통령 선거전의 뚜렷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을 것이다. “특별한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이 후보, 웬 땅이 그렇게 많으시오?
우선 아주 성미 급하게 이명박 후보에게 한 가지 요구를 해야겠다. 차명이냐, 아니냐는 논란으로 아직 의혹이 안 풀리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후보의 재산이 왜 그다지도 많으며, 특히 경쟁후보 측에서 제시한 자료를 보면 호남을 제외한 제주도 등 전국 곳곳에 어떻게 이 후보와 그 집안의 땅, 땅, 땅이 그렇게 많으냐 하는 것이다.
미국의 빌 게이츠는 전 세계적으로 최고인 액수를 자선사업에 기부하여 신선한 화제가 되고 감동을 자아냈다. ‘새로운 자본주의’ 운운하며 그의 역량을 빈곤 해결에 쏟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이 후보도 연령, 재력, 위치 등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이제 통 크게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하등 어색할 것이 없다고 본다. 특히 땅, 누구의 말마따나 ‘그 놈의 땅’을 그렇게도 많이 가졌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있어서의 ‘땅의 정의’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를 숙고하여 모범을 보일 필요도 있을 줄 안다. ‘땅의 정의’라 말할 때 땅 과다소유의 결과적인 대중수탈구조를 염두에 두고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 주의’해야 할 ‘CEO주의’
이 후보는 현대건설의 최고경영자(CEO)를 하였고, 서울시장으로서 업적으로 올렸다는 것이 강점이다. 나는 전에 <헌정> 잡지에 쓴 글에서 정책을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것과 같은 비중으로 그 정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집행하느냐 하는 것이, 특히 보수정치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고 그러한 집행역량을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썼었다. “운영이 즉 정책(Operation is the policy)”이라는 명구를 인용하면서이다. 이 후보가 보여준 그 정책집행 역량에 많은 국민들이 큰 기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 ‘CEO주의’에는 ‘요 주의’라는 단서가 붙는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GM(제너럴모터즈) CEO 찰스 윌슨은 “GM에 좋은 것은 USA에도 좋다”는 명언(?)을 토했다가 시비꺼리가 되었었다는 것은 대단히 유명한 일화다. GM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이 등식(等式)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부등식일 수도 있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아이젠하워의 고별연설이다. 그는 미국의 군ㆍ산 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를 경계하여야만 한다는 역사적인 인용구를 남긴 것이다. 우리나라라면 관ㆍ산 복합체(bureaucratic-industrial complex)쯤이 알맞을 것일까.
오래 전 이야기말고 요즘 것을 보자. 엄청난 부자인 태국의 탁신 총리는 CEO주의자다. “기업이 국가이고, 국가는 기업이다”라는 대담한 호언장담으로 기염을 토하기까지 했단다. 그러나 그는 정치에 실패하고(불행하게도 군부에 의해서지만) 축출됐다. 어느 언론에서 보니까 그의 정치를 금권적 민중주의(pluto-populism)이라는 레테르를 붙여 부르고 있다. 여담이지만 축출된 탁신은 대단한 재력가이니까 근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벌인 맨체스터 시티의 축구 클럽을 사들여 호기를 부리고도 있다.

대운하, 숙고에 숙고를 거듭해야
급하게 이야기 할 게 또 있다. 이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잘못(?) 되어버린 대운하에 관해서이다. 어느 논자가 대운하는 하나의 시책구상이지 정책구상일 수는 없다고 까다롭게 따지는 것을 읽은 일이 있다. 또한 중앙선관위에 대통령 예비후보로 등록한 어느 후보는 그 공약에 약간 익살스럽게도 이명박 씨를 국토개발부장관에 임명하겠다고 기재했단다. 건설회사의 경력이 있기에, 그리고 청계천 복개 ‘걷어내기’에 성공했기에 대운하에 집착한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토건국가적 발상으로 앞으로의 국정에 임하면 곤란하다. 전날에 일본의 타나까(田中角榮) 수상이 ‘일본열도 개조론’을 부르짖었었지만 그것은 이해관계 기업들, 지역구 의원들과 얽혀 춤추는 가운데 전국을 시멘트 투성이다시피 만드는 결과가 되지 않았는가.
숙고에 또 숙고를 바란다. 당내의 심의에 툭 터놓고 회부할 수도 있고, 혹시는 앞으로 크로스보팅 방식으로 국회의 심의에 맡길 수도 있겠으며,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국민투표까지도 생각할 수 있겠다. 결과는 모르겠지만, 수나라의 양제가 판 대운하에 비견할 수 있는 대역사가 아닌가. 그것도 앞으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이 후보 ‘경제정책’, 대기업만을 위한 것 아닌가
전에 내가 만난 젊은 세대 가운에 많이는 이 후보에게 ‘개혁적’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나도 막연히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아마 6.3세대라는 학생운동가의 이미지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6.3세대라는 것은 좋다. 그런데 6.3은 4.19와는 많이 달라서 너무 지나치게 내세울 일은 못된다고 본다. 즉 한일협정 반대투쟁인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일협정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간주되는 게 아닌가. 물론 반대투쟁이 있었기에 변증법적 역할에 따라 교섭의 뒷받침은 됐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때 한국일보 사주로 경제부총리도 지낸 장기영 씨는 “한일협정은 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사가 되는 날 반기(半旗)를 내거는 심정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러한 개혁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 후보는 이제까지 공약한 대로 경제발전 방침을 계속 밀고 나가야 하리라고 본다. 그런데 경제공약 세부를 살펴보면 그것이 혹시는 대기업의 이익만을 위한 결과가 되는 게 아닌지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국민생활에 대한 총체적인 구상을 가져야 할 것이다. 현대그룹의 노사관계가 강파르기로 너무나 유명했었기에 이 후보의 진짜 노사관은 어떤 것인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성장기에 빈곤을 체험한 것을 내세우는데 복지정책의 구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요즘 내가 통독한 책에 <88만 원 세대>라는 게 있다. 10대말, 20대의 알바세대가 한 달 평균 88만 원선에서 희망도 없이 내몰리고 있는 암담한 상황을 사회학적, 경제학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누구나 비정규직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데 그런 선상에서의 젊은이들의 밑바닥 삶이다.
‘7%성장-4만 달러 국민소득-7대 강국’ 운운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절박한 문제에 그런 그림의 떡과 같이 보이는 슬로건만으로 대처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학철부어라는 어려운 4자성어를 써서 표현하기도 했는데,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가 물이 말라가서 죽게 되었다고 구명을 요청하는 판에, 개울에서 수로를 내어 물을 끌어다 주겠다고 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라나. 88만원 세대 등에게는 ‘7.4.7 구상’이 그렇게만 비춰질 것이다. 이 후보가 보다 자상하게 개혁적이 되기를 기대한다.

남북문제, 이제는 ‘북한문제’ 차원에서 봐야

빠트릴 수 없는 게 남북문제다. 나는 한나라당도 만약에 집권당이 되면 이제까지의 정권의 대북정책을 그 대강에 있어서는 승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왔었다. 그러던 차에 정형근 의원이 중심이 된 구상이 발표가 되고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이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확정이 아니라는 불필요한 꼬투리를 달기도 하지만.
요즘 어느 학자가 쓴 좋은 논문을 보니 남북관계는 ‘분단체제’에서 ‘북한문제’로 크게 차원이 바뀌었다고 분석을 하고 있다. 사례연구를 한 것을 보면, 예를 들어 프에블로호 사건 때는 ‘분단체제’였다. 협상도 그런 차원이다. 그러나 6자회담에서 북핵을 논의하는 차원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분단체제’가 아니라 ‘북한문제’ 차원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 사이에 러시아와 중국의 북한과의 관계가 크게 달라졌다. 또한 북한은 우선 경제에서 실패한 체제이다. 남한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기에 북한은 이제 진정 보살펴야 하는 ‘북한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긴 말을 할 계제가 아니어서 세부적인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남한은 북한을 통 크게 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합작’ 운운의 차원은 외교적 수사로써 말고는 이미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경제협력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 6자회담의 틀에서 북핵문제를 풀고 동북아 평화체제를 점차 구축해 나가야 한다. 아마 그런 현실주의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남북문제에 관한 정책구상은 스스로 분명해질 것이다.

이 후보, 아직 국민들을 감동시키려면 멀었다
이 후보가 확실하다고 성급히 말하기에는 아직 짧지 않은 기간이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풀지 못한 난제들이 있어 불만이 쌓여있고 변화의 소용돌이가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사회이다.
어느 후보가 되었던 그러한 국민에게 희망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때 국민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에서는 이겼지만 국민들을 흡족하게 납득시키지 못했고 국민들에게 꿈을 주고 그들을 감동시키기에는 아직 멀었다 할 것이다. 돌풍이 일어날 확률은 없겠으나 비록 알 듯 모를 듯한 미풍이라도 다른 곳에서 어떻든 바람이 생겨날 개연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이 후보에게 골치 아픈 말만 늘어놓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와 같은 한나라당 안목에서 벗어나 이제는 국민의 안목으로서의 인식과 구상의 도약을 기대하여서인 것이다. 나는 결코 인색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