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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장애인들에게 그는 ‘최고의 연예인이자 친구’

장관상에서 시문화상까지 수상경력 다양
전국 장애인단체 행사 무료로 사회 도맡아
Close-up | 방송인 박남춘

   
 
방송에선 많은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장애인단체 행사라면 어디서나 모습을 볼 수 있는 연예인.
일반인이라면 ‘어? 누구지?’ 할 수 도 있을 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숱한 수상경력을 살펴보면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경기도지사 표창, 경기예술상 도지사 공로패,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한국예총예술문화상, 용인시문화상 등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수상경력에 장애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박남춘씨를 만났다.

△ 방송인으로서의 박남춘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가 되는 꿈을 가졌어요. 중학생 때는 극장에서 살 정도로 꼭 연기자가 되고 싶었죠. 당시만 해도 연예인 하면 ‘딴따라’로 무시당하는 시대여서 가족들이 가족여행을 가는데 절 떼어 놓고 다닐 정도였어요.”
반대도 있었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는 명지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그의 꿈처럼 1980년 KBS연기자 특채로 입사하게 된다.
그가 처음으로 방송에서 모습을 보인 것은 연기자로서가 아니고 보조MC, 황인용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100세 퀴즈쇼’에서 보조 MC를 맡으면서였다.
이미 야간업소에서 사회를 보고 있던 터라 진행에 특별한 능력을 보여 쇼프로그램에서 진행을 맡기 시작했다.
이후 일요일 아침이면 누구나 보던 ‘열전! 달리는 일요일’에서 배일호씨와 보조MC를 맡아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고 ‘6시 내 고향’, ‘전국은 지금’등의 프로그램에서 리포터로 맹활약을 한다.
하지만 그의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기자로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첫사랑, 임진왜란, 김구 등 다양한 드라마에서 연기활동을 펼쳤지만 대부분이 단역이었다.
그러다 KBS에서 하는 특집극에 성철 큰스님 역할로 첫 주연을 맞게 된다.
“드라마에서 이렇게 큰 주인공으로 비중 있는 배역을 맡은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지요. 스님역활이라 과감히 머리를 삭발했는데 이후로 스님역활을 해달라는 제의가 많이 들어와 3번이나 더 스님역을 맡았어요. 하하하.”
단역이 주를 이룬 연기생활이었지만 그는 주어진 역에 한 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연기에 대한 열정과 노력도 있었지만 다른 단역배우들과는 다르게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방송생활과 함께 밤무대 사회자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간업소 사회자를 겸업한 덕분에 빈곤한 방송생활을 하지는 않았어요. 지금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연기에 야간업소 생활이 불필요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요”
그의 말속에 연기활동에 대한 후회와 향수가 느껴진다.

△ 장애인단체 최고의 사회자로
방송으로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장애인들에게 있어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연예인이다. 한번 얼굴보이고 사라지는 유명연예인들과는 다르게 직접 그들과 함께 하며 봉사활동을 펼쳐오고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용인에서는 지역행사 사회를 도맡을 정도로 꽤 유명인이었다. 용인예총 설립당시 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도 활동을 했다.
“사실 용인예총을 만들 때 기획안을 만든게 저에요. 유경석(전 용인연극협회 지부장), 홍영기(전 도의회의장)씨와 함께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용인예총이 탄생한거죠.”
그 후 ‘극단 용인’을 만들고 용인연극협회 초대 지부장으로 활동을 했다.
그가 장애인단체와 연을 맺은 것은 16년 전 용인에서 장애인단체 행사 사회를 보면서 부터다.
“용인장애인협회 행사에 서울장애인단체 조직국장님이 오셨었는데 제 사회 보는 모습을 보시고 연결을 해주셔서 중앙행사 사회를 보게 됐어요. 또 중앙에서 사회를 보다보니 전국에서 연락이 오게 되고 그때부터 바빠지게 된 거죠.”
그는 전국에서 열리는 장애인단체 행사 사회를 도맡아 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모두 무료로 봉사를 하고 있다.
“대부분 다 무료로 사회를 봐드리고 있어요. 가끔 차비라도 하라고 돈을 주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결국 거기서 봉사활동에 돈을 다 써버리고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죠. 몇 년 전에는 영월에서 행사 진행을 봤는데 행사에서 이리저리 돈을 쓰다 보니 차비가 없어진 것도 몰라 올라오느라 고생했죠.”
지난 4월에는 한 달에 28군데 시·군을 다니면서 사회를 봤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회를 보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전국의 장애인행사라면 어디든 달려가 봉사하는 그는 장애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연예인이자 사회자다.
“얼마 전 수원역전 지하차도에서 한 장애인이 너무나 반갑게 인사를 해주셔서 인기를 실감했어요. 전국어디서나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죠. 얼마 전에는 제가 사회를 보는 도중에 한 장애인이 박수치며 너무 즐거워하다가 휠체어에서 떨어져서 안타까웠던 적도 있어요.”
연기자로서는 큰 성공을 했다고 할 수 없지만 장애인들에게 그는 최고의 연예인이자 친구다.
이렇게 많은 행사들을 다니다 보니 피곤할 만도 하지만 즐거워하는 장애인들을 보는 보람에 그는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고 한다.

△ 0점짜리 가장, 가족들에게 미안해
경기도 지체장애인협회 홍보대사, 한국연예협회 시흥지부장, 예총 시흥지부 수석부지부장, 장애인단체 진행봉사 등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생활에 가장 많이 피해를 본 것은 그의 가족들이다.
“사실 가정을 유지하고 이끌어 온 것이 아내였어요. 이리저리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생활비를 벌어오기는 커녕 아내에게 손을 벌렸을니 아내가 미쳤다고 하는 것도 당연하죠.”
그는 오래전에 은행에서 돈을 찾아오라고 아내가 부탁했는데 어떻게 돈을 찾아야 하는지 몰라 현실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그를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게 한데에는 가족의 힘이 컸다.
“15년 동안 수입이 하나도 없었어요. 방송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도 아니고 사회 보러 가서 돈을 받아오는 것도 아니고. 결국 아내가 사업도 하고 활동하면서 생활도 꾸려나가고 아이들도 키운 것이죠. 그저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뿐이 할 말이 없어요.”
이런 남편의 모습을 계속 지켜봐서인지 그의 아내 서양덕(47)씨도 3년 전부터 독거노인들을 위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아내가 얼마 전 새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동안 가정에 소홀했던 것 때문인지 그도 직접 사업체 명함을 만들어 홍보를 하고 다닌다고 한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아내를 힘들게 했는지 반성하고 있어요. 이제는 저도 아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이제 가족을 위해서 지금까지 못한 만큼 더 노력하려고 합니다. 20년째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는데 사회를 봐야하는 행사가 대부분 주일에 있어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빠지지 않으려고 해요. 앞으로 조금씩 시간을 내서 가족들과 함께 예배도 드리고 성가대 활동도 하고 싶어요”
그의 다짐에서 가족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