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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여러 사람을 비추는 손전등처럼…”

가난한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원주민들 찾아 도움
50세에 신앙생활 시작 … 카네기 통해 열정 배워

   
 
“어려서 고생을 많이 하고 살았기 때문에 힘든 이웃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근면 성실로 이룩한 부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보람 있게 나누는 주인공이 있다.
김흥수(52). 국제로타리 3600지구 신갈로타리클럽의 차기 회장을 앞두고 있는 그는 내년 2008-2009 회장이 되면 동남아 오지에 대한 봉사를 비롯, 개인적으로는 선교 활동 지원 및 불우이웃 돕기 등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손전등을 저에게 주셨으니 내 앞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다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앞뒤좌우 밝은 빛을 비추며 살려고 합니다.”
그는 대화 도중 지난 1월 신갈로타리클럽의 일원으로 필리핀의 아이따족을 방문해 산속에서 문명을 모르며 지내는 원주민들에게 물품 지원 및 기술학교를 세워줬던 일을 떠올렸다.
가난의 대물림으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면서 살아가는 그들 종족을 보면서 측은하기 짝이 없었다고 하는 그는 차기 회장이 되면 지구촌 형제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며 로타리클럽의 국제 봉사활동정신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천국에서 산다는 것을 느꼈어요. 움막서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아가는 그들을 대하면서 세상이 이렇구나 새삼 깨우쳤지요. 회장이 되면 필리핀 이외에도 동남아시아 등 못사는 어려운 나라를 더 찾아내 도와주고 싶습니다.”

#힘겨운 청소년기
경북 풍기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부친의 오랜 병환의 시작으로 가세가 기울면서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노란 조밥 도시락을 싸주시곤 했어요. 한창 사춘기의 나이다보니 창피해서 못 먹겠더라구요. 도시락 뚜껑을 닫곤 했죠. 조밥은 물에 말지 않으면 까칠해서 먹기가 힘든데 배가 고프니 개울물에 말아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하늘을 보며 부모님 원망도 했습니다. 왜 나의 부모님은 쌀밥을 못 싸 주실까. 난 열심히 돈 벌어서 자식에게 쌀밥 싸줘야겠다며 다짐을 했었죠.”
어린 나이에 “꼭 성공을 해야겠다”고 남달리 결심을 굳힌 그는 최선을 다해서 한걸음 한걸음 오늘에 이르기까지 근면과 성실로 성공의 탑을 세웠다.
“시간을 아껴가며 너무 열심히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제게 남들처럼 많은 재산을 물려주지는 못하셨지만 가난이라는 가장 큰 재산을 물려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겁니다.”
물질적 어려움 앞에 곧잘 좌절하는 요즘의 청년들과는 달리 청년 김흥수, 그는 가난이라는 고통을 가장 큰 재산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큰 그릇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도 많이 먹는 것처럼 남보다 잠도 덜 자고 노력도 많이 하는 사람이 성공을 한다고 생각을 했지요. 성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다 노력의 댓가라고 봅니다.”
그는 최근 용인카네기의 조찬 강연에서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씨의 강연을 듣고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며 특히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고 했다.
“한때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으로 있던 고도원씨도 절망적인 시절이 있었더군요. 그는 누구나 봉우리만 이야기 하고 계곡을 이야기하려 않지만 누구나 깊은 계곡이 있다는 좋은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저 역시 절망의 계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는 공감을 했습니다.”

#덕을 바다처럼 널리 펴다
그는 80년대 중후반에 건재상으로 기반을 잡았고, 90년대 초반에는 덕해(德海) 건설 회사를 운영했다. 건축 경기가 좋을 때였는데 밤이 낮인지 낮이 밤인지 모를 정도로 바삐 살았다.
“별보고 나와서 별 보고 들어갔어요. 별을 품고 살았죠. 너무 바쁘다보니 돈 쓸 시간도 없더라구요. 안쓰니까 모여요. 저는 헛된 데는 돈 10원도 안씁니다. 우리 가족들도 나를 닮은 것 같아요. 헛되이 낭비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절약의 미덕을 알아야 해요. 절약을 통해 봉사를 더욱 넓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덕해라는 호는 덕을 바다처럼 널리 퍼뜨리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버는 것 생각하면 아무 곳에나 낭비할 수 없지만 그는 봉사하는 일이라면 아낌없이 정성을 다한다.
10여년 동안 동네 차상위 계층의 어려운 집 6가구를 정해 수시로 쌀이며 운동화 라면 생활비 등을 전달하고 있다.
“쌀을 어깨에 메고 직접 찾아다니며 나눠드리곤 하는데 할머니들은 저를 붙잡고 고맙다며 울어요. 그럴 때는 보람을 느끼면서 행복하구나 하고 생각하지요.”
고아원에도 3, 4명 지정해놓고 꾸준히 지원했다. 크리스마스나 추석 때면 옷도 사주고 맛있는 식사도 함께 먹으며 친자식처럼 지냈다.
그 아이들이 이제 취직해서 간혹 찾아오고 전화도 한다. 너무 생각난다며 건강하라는 편지와 함께 정성스런 과일 한 박스가 전달될 때면 그 보람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확대해서 돕고 싶다.

#열정
“내년에 로타리 회장이 되면 회원 모두를 한마음으로 만들어 잘 이끌어 나가는 게 최대의 목표입니다. 단합이 돼야, 한마음 한뜻이 돼 똘똘 뭉쳐야 사업 프로젝트도 잘 추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원래 권사셨는데, 저는 나이 50이 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어요.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절제할 것 절제하면서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페루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사막에 판자촌을 짓고 여자 선교사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어렵게 선교사업을 하는 것을 봤어요. 그런데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용인카네기 3기 회장인 그는 카네기를 통해 열정을 배웠다고 했다. 또한 카네기 교육을 통해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가졌다고 했다.
주어진 임무에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김 회장. 그의 삶은 카네기 교육의 핵인 열정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감당 못할 일이라면 분명하게 포기해서 남이라도 책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거나, 그렇지 않을 거라면 주어진 직분에는 책임과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다.
그는 로타리 회장이면 회장, 교회 집사면 집사, 관곡초교 학교운영위원장이면 운영위원장, 자신의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할 각오가 돼 있다.
50년 인생의 길을 땀과 열정으로 일궈온 김흥수 회장. 그는 앞으로 펼쳐나갈 시간을 사랑과 봉사로 따뜻하게 가꿔나갈 것을 생각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