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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102 | 평창 민박 | 이용임

평창 민박

평창 민박


이용임


고요한 여자는 잠이 들어
깨어나지 않고

새소리를 잡아먹으며 눈이
내리고

숲 속에는 누가 사나
검은 발톱 바람

흘러내리는 시간은 시계에

잊어버리는 표정은 벽지에

고독한 여자는 잠이 들어
깨어나지 않고

윤곽을 지우며 고양이의 눈은
내리고




아내는, 처음엔 호텔 같은 여자였다. 깨끗하고 세련됐으며 엄청 ‘비싸게’ 행동했다. 그랬던 호텔이 온갖 풍상 겪고 나니, 장식은 떨어져 나가고 페인트칠은 벗겨졌으며 여기저기 아프다고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가끔 ‘낡음’과 ‘익숙함’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내를 낡게 만든 나의 잘못인 것이 분명하다. ‘낡음’과 ‘늙음’은 분명 차이가 있다. 누가 저 여자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워 낡아가게 했는가. 누가 저 여자의 자궁을 빌려 오늘의 기쁨인 아이를 만들었는가. 그 상큼했던 미소마저 무뎌질 대로 무뎌진 여자는 이제 시골 민박집 같은 느낌으로 살아간다. 아침마다 화장기 없는 민낯으로 라디오를 틀어 놓고 빵을 자르며, 어슴푸레한 식탁에 앉아 졸고 있는 아이와 술이 덜 깬 남편을 일으켜 세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고독은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곧 그녀에게도 막막한 쓸쓸함으로 나를 버리고 너도 버리고 그저 온통 눈 덮인 세상 구석 끝까지 들어가고 싶은 겨울이 올 것이다. 그럴 땐 아내를 떠나보내자. 그리고 다시 아내를 찾아 떠나자. 사람들이 찾아가기 불편한 곳에 호텔은 없다. 거긴 민박만 있을 뿐. 생각해보자, 결혼 전 당신과 나의 아내는 무슨 생각으로 세상 가장 구석진 곳에서 저 혼자 외롭게 떨고 있는 민박집 같은 당신과 나를 찾아왔겠는가.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