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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03 | 친애하는 사물들 | 이현승

친애하는 사물들

이현승


아파서 약 먹고 약 먹어서 아팠던 아버지는
주삿바늘을 꽂고 소변주머니를 단 채 차가워졌는데
따뜻한 피와 살과 영혼으로 지어진 몸은
불타 재가 되어 날고 허공으로 스몄는데

아버지의 구두를 신으면 아버지가 된 것 같고
집 어귀며 책상이며 손닿던 곳은 아버지의 손 같고
구두며 옷가지며 몸에 지니던 것들은 아버지 같고
내 눈물마저도 아버지의 것인 것 같다

우리는 생긴 것도 기질도 입맛도 닮았는데
정반대의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본다
포옹하는 사람처럼 서로의 뒤편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마주 오는 차량의 운전자처럼
무표정하게 서로를 비껴가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대개 엄마보다 먼저 죽고, 이 땅에서 나고 자라 나이 사십을 넘긴 자식들은 아버지를 제대로 안아본 기억이 없다.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돈은 집밖에 있고, 아버지는 언제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없었다. 모든 것을 물려받았는데, 내 몸과 맞는 것이 하나도 없는 아버지. 내가 지금 나의 아이들을 꼭 안아주는 것은 어쩌면 아버지를 안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안고 싶어도 안을 수 없고, 안을 수 없어서 더욱 서글퍼지는 아버지. 나는 나의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는데, 지금의 나를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절반도 닮지 못하였구나. 사람들은 나를 보고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고 하는데 말이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