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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42|서랍이 달린 여자|이주언

서랍이 달린 여자


이주언


여자의 몸에 달린 기억들. 가시로 손톱 밑 찔러대는 것들. 찌르면서 부드럽게, 피 흘리며 고귀해지는 것들. 하나의 몸에 달린 치명적 기분들!

아랫배 서랍 열린다. 젖을 빨며 요람에 눕고 싶은 것들. 혈액으로 쏟아지기 이제는 지겨운, 가득한 하품과 지루의 표상으로 남은 것들. 캄캄한 궁에 들면 편안히 눈감는 것들이 붉은 눈동자로 흘겨본다. 쾅 닫아버려야지, 저것들! 그러나

해안 가득한 요람. 그 속에서 바둥거리며 뭇 생명이라 불리는 것들. 아직 이름 얻지 못한 것들이 운다. 입을 연다. 하나의 요람에는 하나의 발성법. 너희는 아직 하나의 서랍뿐이구나! 운다. 거미줄에 걸려든 태아가 운다. 끝없는 분열의 근원, 저 신생의 불안들에게

젖을 물린다. 뻥 뚫린 가슴으로 도대체 젖을 먹일 수가 없다구! 서랍 잃은 여자가 기억을 붕대로 친친 감고 있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사라진 가슴 주워 모으고 있다. 꺼이꺼이 웃어주고 있다. 경멸의 눈빛들 바닥을 긴다.

이마에 달린 손잡이 잡아당긴다. 작다. 이 작은 서랍이 나를 지탱해주기를. 흙탕물 가득하다. 흙탕물의 역동 다 지났다 생각한 지점에서 다시 물결친다. 운다. 작게 운다. 너는 언제나 작게 울어야 한다고 주문을 건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 서랍이 쾅 닫힌다. 이마를 싸매는 비루한 자존심의

서랍들,
열렸다 닫혔다 열렸다……
갈등의 무한 반복이 전 생애라는 듯



*서랍이 달린 여자 : 살바도르 달리의 브론즈, 「서랍이 달린 미로의 비너스」




서랍은 자궁처럼 깊다. 여자의 몸은 가늘지만 자궁은 깊고 두텁다. 자궁이 열리면 닫힌 세계가 열린다. 잊힌 사랑이 튀어나오고, 태아가 기어나온다. 처음에 서랍은 소중한 것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록 서랍은 버려지는 것들로 채워진다. 당신은 가장 깊숙한 마음의 서랍을 열어본 적 언제였는지...
박후기 시인 <hoogiwoo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