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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52

숙호에서 길을 잃다

김인자

서른 발자국을 걸었을 뿐인데 무덤 앞에서 길을 잃었다
한때는 다시없는 꽃밭이었을 저 조붓한 길
지금쯤 무덤 주인은
망연히 숙호*마을 낯익은 굴뚝을 바라볼 테고
섬처럼 홀로 어둠에 들 키 작달막한 그의 안식구도
처마 끝 풍경이 흔들릴 때마다 까치발로 서서
구절초 핀 동그란 무덤을 지켜볼 것이다

빤히 보이는 곳에서도
연기처럼 잡을 수 없는 것이 그리움이라면
생生과 사死란 집요하게 벽을 타고 올라가
곤히 잠든 식구를 들여다 볼 수는 있어도
더듬어 만질 수 없는 담쟁이 넝쿨 같은 게 아닐까

살아서 손잡고 가는 소풍이라면
설흘산* 봉수대 나란히 기대앉아
대나무밭에 이는 바람소리로 귀를 씻고
만추에 물든 푸른 앵강만鶯江灣* 바라보며
죽음도 나쁘지 않을 것이나
살아있어서 이렇게 눈부신 거라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이다

가을이 계절의 벼랑 끝으로 걸어가고
마을엔 여전히 소문처럼 연기가 피어오른다
왜 나는 연기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까
돌아보면 잡고자 했던 모든 것이 한갓 연기였음에도

주) 숙호는 경남 남해군 남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고, 설흘산은 남면에 있는 산이며 앵강만은 남면에 있는 호수처럼 생긴 만이다.



바닷가에 산다는 것은 벼랑 끝을 걸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먼 데를 바라보지 않으면 생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절벽 아래로 고꾸라질 것만 같은 아찔한 느낌을 달고 산다, 우리는. 왜 우리는 그토록 먼 곳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일까. 생은 발아래 펼쳐져 있고 꿈은 어느덧 등 뒤에 남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