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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마지막회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마지막회
 
동백, 대신 쓰는 투병기
 
박후기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계절에 대해 생각해
가을에 태어난 아버지는 가을에 죽었고
봄에 태어난 형은 봄에 죽었지
부지불식간, 꽃 피는 순서는 있어도
꽃 모가지 떨어지는 순서는 없다지
 
묘역을 공원이라 부르니
죽음이 더욱 친밀해지더군
동백 무덤, 언 땅을 파지 않아도
죽음은 꽃 구덩이에 파묻히지
바다로 가는, 걷고 싶은 죽음의 둘레길
산다는 게 죽음의 둘레만 빙빙
돌다 가는 일인지도 몰라
 
사랑은 피어나는 순간
종말이란 걸 알아야 해
그러니 서로 살 섞기 직전까지 간직해 온
붉고 짙은 설렘만 주고받기로 하자
우리 언제나 사랑의 도입부에만 머무르며
아, 꽃 피기 직전의 떨림으로 추락을 맞이하자
 
언 땅 위에서 자고 일어나면
봉오리가 부어올라 눈을 뜰 수가 없어
얼굴에 화색이 돌지 않는다고 걱정하진 마
꽃이 색을 기억하는 건
얼굴 표정이 그대로 여물어서
씨앗이 되었기 때문이야
 
다음 생의 겨울엔
곱은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면
흐릿한 연기와 함께 훅, 하고
불이 피어오르는 그런 저녁이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어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밤,
 
불안과 다투는 시간이 짧았으면 좋겠어
 
한때 떨어진 꽃잎을 주워 담아
소쿠리 가득 내게 주던 엄마는
이제 소쿠리 하나 가득
박하사탕을 담아 내게 건네주지
세상에 아름다운 요양원은 없어
툭, 하고 지나간 세월
바람의 보조금에 매달려
겨우 목숨 부지하는 시든 꽃들
얼음장 위에 버려진 꽃들에게
혈색을 묻는 안부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람
 
문 열지 않으면 문밖은 없어
문 열지 않으면 너밖에 없어
문 열지 않으면,
문을 열지 않으면
 
그러니까
징그럽게 눈 뜨고
힘닿는 데까지 살아야 해
부탁이야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이 있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뜻하는 용어인데, <울림을 주는 한 편의 시> 또한 이번 글을 끝으로 정리를 하게 되었다. 지난 4년 동안 부족한 글 참고 기다리며 넉넉한 마음으로 지면을 할애해주신 김종경 대표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마감을 미처 지키지 못한 날이 적지 않았다. 어떤 날은 술집 탁자에서, 또 어떤 날은 지리산 골짜기에서 글을 적어 휴대폰으로 날리며 마음 한 구석 참으로 죄송하였다. 한편으로, 너무 고여 있는 것은 아니가 하는 고민도 깊었기에 독자 여러분과 잠시 이별을 고하고자 한다. 어느 자리, 어느 구비에서든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매주 글을 쓰는 일이 사실은 나에게 쓰는 반성문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가야 할 길은 멀고 헤어지는 발길은 무겁기만 하다. 춥고 지난하더라도 힘닿는 데까지 살자고, 머리 숙여 부탁드리고 싶다.
박후기 시인(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