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5 (목)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시로 쓰는 편지 18 |고통을 달래는 순서 | 김경미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18

고통을 달래는 순서

김경미


토란잎과 연잎은 종이 한창 차이다 토련(土蓮)이라고도 한다

큰 도화지에 갈매기와 기러기를 그린다 역시 거기서 거기다

누워서 구름의 면전에 유리창을 대고 침을 뱉어도 보고 침으로 닦아도 본다

약국과 제과점 가서 포도잼과 붉은 요오드딩크를 사다가 반씩 섞어 목이나 겨드랑이에 바른다

저녁 해 회색삭발 시작할 때 함께 머리카락에 가위를 대거나 한 송이 꽃을 꽂는다 미친 쑥부쟁이나 엉겅퀴

가로등 스위치를 찾아 죄다 한줌씩 불빛 낮춰버린다

바다에서 가서 강 얘기 하고 강에 가서 기차 얘기 한다

뒤져보면 모래 끼얹은 날 더 많았다 순서란 없다

견딘다

--------------------------------------------------------------------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고통을 달래는 순서’에 관한 시 입니다. 저만치 토란잎과 연잎을 구별할 수 있나요. 어쩌면 모든 게 “종이 한창 차이”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무심코 그려놓은 “갈매기와 기러기 역시 거기서 거기”인 것도 같군요. 당신은 “구름의 면전”을 살피다가, “포도잼과 붉은 요오드딩크를 사다가 반씩 섞어 목이나 겨드랑이에 바”르기도 합니다. 무슨 연유일까요. 우리의 시인은 ‘고통을 달래는 순서’는 알려주지 않고 딴청입니다. 가만가만 “머리카락에 가위를 대거나 한 송이 꽃을 꽂는다”니 이제 알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지금 “가로등 스위치를 찾아 죄다 한줌씩 불빛 낮춰버”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습니다. 타인의 고통,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겠지요. 만약 당신이 “바다에서 가서 강 얘기 하고 강에 가서 기차 얘기”를 한다면, 듣는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습니다. 시인이 숨겨놓은 마음이 다음 구절에 담겨있네요. “뒤져보면 모래 끼얹은 날 더 많았다”. 그렇군요. ‘고통을 달래는 순서’ 따위는 없습니다. 오직 “견딘다”라는 방법만이 오늘의 진실.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