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29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김기택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
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크게 밤공기를 들이쉬니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
허파도 별빛이 묻어 조금은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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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들의 절기, 문득 그런 순간이 있지요. 하나의 소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소리가 찾아오는 때. 텔레비전을 끄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렇게 찾아온 풀벌레 소리에는 가을 별빛마저 묻어있는데요. 시인은 누구에게나 들리는 큰 목소리가 아닌, 마음을 기울인 자에게만 찾아오는 작은 소리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미물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이렇게 골똘하게 생각하다니, 누군가 그랬지요. 시인은 신의 대리자라고 말입니다. 어느새 인간의 귀는 텔레비전 소리에 길들여져, 이름 없는 풀벌레의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워졌지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닫아버리는 세상처럼, 어쩌면 그보다 먼저 닫아버린 건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광장 바닥에 떨어져 새카맣게 나뒹구는, 문장 이전의 울음들을 말이지요. 지금은 마음의 심호흡이 필요한 때, 한 줌 별빛에 마음을 씻기 위해.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