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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39 |신뢰 |김승일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39


신뢰


김승일


기계가 되고 싶다고 했지? 기계가 되는 법을 너는 몰랐지? 아직 몰라 답답하고 안타깝게도
우린 아직 기계 되는 법을 모르고 기계들은 네가 된다
본질적으론, 기계들이 네가 되면 기계가 너고 기계인 너는 오늘 되고 싶은 게
되어 있고 너는 이제 만족했을까?
입력하면 기계들은 믿는 것이다 믿기지가 않을 텐데 망설임 없이
기계에게 입력했다 너는 부자야 기계가 대답했다 나는 부자야 누가
내게 물어봤다
너는 부자야? 기계처럼 대답했다 나는 부자야
기계처럼 대답해도 나는 부자가 아니구나
만약 내가 진짜 부자면…믿을 수가 없을 거다 너무 좋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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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신뢰’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시의 첫 구절은 질문으로 시작되는데요. 나와 너는 기계가 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는 사이, 기계들이 먼저 네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어지지요. 이제 나는 “기계가 너고 기계인 너”를 마주합니다. 기계평론가 이영준은 <기계산책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기계를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기계의 조종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를 조종하는 기계는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듯이 어떤 특정한 개별적인 기계가 아니라 사람과 기계가 얽혀 있는 환경의 매트릭스이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이어지는 나의 질문이 예사롭지 않지요. “되고 싶은 게 되어 있고/너는 이제 만족할까?”. 다시 ‘신뢰라는 말을 신뢰하지 못함’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입력하면 기계들은 믿는 것이다 믿기지가 않을 텐데 망설임 없이”. 어디선가 들려오네요. 우리는 기계가 아니야, 부정해도 소용없는 혹은 부정함으로써 소용 있을.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