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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43 |첫새벽 |한강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43


첫새벽

한강


첫새벽에 바친다 내
정갈한 절망을,
방금 입술 연 읊조림을

감은 머리칼
정수리까지 얼음 번지는
영하의 바람, 바람에 바친다 내
맑게 씻은 귀와 코와 혀를

어둠들 술렁이며 포도(鋪道)를 덮친다
한 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 텃새들
여태 제 가슴털에 부리를 묻었을 때

밟는다, 가파른 골목
바람 안고 걸으면

일제히 외등이 꺼지는 시간
살얼음이 가장 단단한 시간
박명(薄明) 비껴 내리는 곳마다
빛나려 애쓰는 조각, 조각들

아아 첫새벽,
밤새 씻기워 이제야 얼어붙은
늘 거기 눈뜬 슬픔,
슬픔에 바친다 내
생생한 혈관을, 고동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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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껴두었던 ‘첫 새벽’을 그대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정갈한 절망”으로 귀결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절망은 “맑게 씻은 귀와 코와 혀”의 전언일 거라 믿고 있습니다. 간절해서 간절한 질문, “제 가슴털에 부리를 묻”고 있는 철새는 언제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요. 한편 시인은 한 산문에서 “어둡다. 우리가 이렇게 어두웠었나.”라고 묻고 있습니다. 만약 미래가 어둠의 시간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살얼음이 가장 단단한 시간”이기도 하겠지요. 그럴 때 존재와 존재들은 “빛나려 애쓰는 조각, 조각들”의 다른 이름으로 환합니다. 오늘 탄식인 듯 호명해보는 “아아 첫새벽”. 어쩌면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눈부신 환희보다, “늘 거기 눈뜬 슬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 “슬픔에 바”치는 수밖에. “내/생생한 혈관을, 고동소리를” 말이지요. 겨울의 혈관 속에 수혈되고 있을, 봄의 고동소리와 함께.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