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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44 |이과두주 |유홍준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44

이과두주

유홍준

희뿌연 산
언덕에는 흰 눈이 내리고요
얼어 죽을까봐 얼어 죽을까봐
나무들은
서로를 끌어안고요
동치미 국물 동치미 국물을 마시며
슬픈 이과두주 마시는 밤
또 무슨 헛것을 보았는지 저 새카만 개새끼는 짖구요
저 하얀 들판에는 검은 새들이 내리고요
저 하얀 들판에는 검은 새들이 내리고요
짬뽕국물도 없이
시뻘건
후회도 없이
내리는 눈발 사이로 흘러가는 푸른 달 틈으로
적막하고 나하고 마주 앉아
이과두주 마시는 밤

이 조그만 것에 독한 것을 담아 마시는 밤

이 조그만 것에도 독한 것이 담기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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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과두주(二鍋頭酒) 이야기. 두 번 솥에서 걸렀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답니다. 투명한 증류주, 겨울밤과 잘 어울리는 술. 증류된 슬픔도 같은 빛이겠지요. 눈까지 내린다면, 세상이 일순 환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만치 서로를 끌어안은 나무들.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눈매를 상상해 봅니다. 안주는 맵고 붉은 국물보다, 슴슴한 동치미 국물이 알맞겠지요. 흰 눈발과 푸른 달만이 허공을 채우고 있네요. 유홍준 시인은 비정형적인 것들이 지닌 미학적 성취와, 오래된 것들로부터 시적 직관을 추구한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하얀 들판 위의 검은 새들은 신이 찍어놓은 몇 점 마침표일까요. 이제는 처절한 후회마저 내려놓은 ‘나’. 무심한 초대를 받고 온 ‘적막’은 ‘나’의 오래된 친구인 것 같습니다. 친구와 함께 마시는 이과두주 한 잔. 후회보다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세상 걱정, 아니면 당신 걱정일까요. 독한 그 무엇이 자꾸만 차오르는 술잔.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