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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55 |미열(微熱) |사이토우 마리코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55


미열(微熱)

​ ​​​​사이토우 마리코


나무에게서 사람에게로 옮는 병이 있다. 땅에다 깊이 뿌리박으면서 하늘을 날고 싶다는 병에 걸리는 이가 있다. 몸통을 쪼개 갖고 자기 나이테를 보고 싶어지는 병이 있다. 자기 몸에다 많은 새들을 앉게 하고 싶어지는 병. 잎사귀 수만큼의 눈빛들을 살랑거리며 서 있고 싶다는 병. 거기에 서고 싶다는 병. 같은 데에 날마다 새롭게 기다리지 말고 늦지도 말고 서 있고 싶다는 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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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 라는 말은 왜 무턱대고 뭉클할까요. 그런데 이채롭게도 우리말로 시를 쓰는 일본 시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처음 한국말을 배웠을 때 나무란 낱말이 나의 가슴속으로 뿌리를 박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지요. 수시로 미열이 찾아오는 봄날입니다. 구름에게서 나무에게로 나무에게서 인간에게로 말이지요. 당신이 창문 바라보는 일이 잦다면, 일상에 얽매인 뿌리를 잠시 잊고 하늘을 날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순간순간 마음의 나이테를 그리다 침묵에 빠지곤 하시나요. 잘 살고 있는 건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문득 새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네요. 어느 눈먼 새가 우리 몸을 나무로 착각해 깃들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는 오후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기다리지 말고 늦지도 말고 서 있고 싶다는 병”이라면 한 생을 앓아도 족하겠지요. 문득, 미열이 피어오르는 당신의 이마를 짚으며.

yudite23@hanmail.net 이은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