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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57 |슬픔을 시작할 수가 없다 |이영주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57


슬픔을 시작할 수가 없다


이영주

슬픔을 시작할 수가 없다
너의 몸을 안지 않고서는
차갑고 투명한 살을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쓸어보지 않고서는

일 년 동안
너는 바다 속에서 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너는 심연 속에서 살처럼 흩어지고 있다
발이 없어서 우는 사람

오래전부터 바다는 잠을 자고 있어서
죽음을 깨우지 못한대
너는 묘지도 없이 잠 속에서 이빨을 갈며 떨고 있다
너는 죽음을 시작할 수가 없다

산 자들은 항상 죽은 자 주위로 모여든다고 하는데
우리는 슬픔도 없이 모여 있다
진정한 애도는 몸이 없이 시작되지 않는다

모든 비밀은 바다 속에 잠겨 있다
바다에서 죽지 않는 손이 올라온다
그 손을 잡아끌어 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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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라는 말처럼 모든 슬픔은 현재진행형인 것 같습니다. 꽃 보는 일이 마치 죄 짓는 일처럼 느껴지는 봄날. 여기 한 시인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퍼지고 있네요. 소중한 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 슬픔조차 시작할 수 없는 처지란 어떤 걸까요. “너의 몸을 안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시작할 수 없는 마음이 오랫동안 저 혼자 견디고 있습니다. 슬픔을 시작할 수 없는 나날, 누군가 약속을 지키는 순간까지 “너는 죽음을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산 자들은 항상 죽은 자 주위로 모여든다고 하는데” 우리가 광장에 모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도는 몸이 없이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아직 생명의 생명들이, 비밀의 비밀들이 바다 속에 잠겨 있습니다. 광장 한 켠 소녀가 속삭임이네요. “언니 오빠들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곧 “바다에서 죽지 않는 손이 올라”오기를 바라며 믿으며 손 모아 올림.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