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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사관의 붓끝에는 눈이 없다

사관의 붓끝에는 눈이 없다.

임금 <태종>이 편전에 계신데 민린생이 문밖에서 엿보고 있었다(上御便殿 閔麟生從戶外以窺). 임금이 왈, “엿보는 자가 누구냐(上見之問於左右曰 彼何人耶)” 하니, 좌우에서 “사관 민린생입니다(左右對曰 史官閔麟生也)”라고 말했다.

감시당하는 것이 불쾌했던 임금은 말한다. 이제부터 사관의 입궐을 금하라(自今史官毋得每日詣闕). 그러자 사관은 경연 때는 병풍 뒤에 숨어서 엿들으며(經筵窺何屛障), 연회 때는 절차도 없이 숨어 들어왔다(又直入內宴). <조선왕조태종실록2권1년7월8일 乙未日>

태종은 극도로 사관을 싫어했고 두려워했다. 어느 날. 태종은 사냥을 갔다. 친히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져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한다.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親御弓矢 馳馬射獐 因馬仆而墜 不傷 顧左右曰 勿令史官知之). 그러나 얼굴을 변장하고 몰래 미행했던 사관(掩面面從)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관은 알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태종실록7권4년2월8일기묘일>

말에서 떨어진 것이 뭐 그리 큰 실수라고 사관이 모르게 하라 했을까. 이는 평생을 말 타고 천하를 누빈 강골이 말에서 떨어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했고 창피했으리라. 그러나 사관의 붓끝에는 눈(?)이 없었다. 사관 민린생은 이렇게 말한다. 신이 곧게 쓰지 않는다면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臣如不直 上有皇天). <태종실록1년4월29일>

사관은 예문관의 봉교, 대교, 검열로 각기 정 7품 정 8품 정 9품으로 품계(조선은 관료사회로 18품 30계의 품계가 있음)의 등급은 낮으나 조선 관료 사회에서 정론직필의 임금도 함부로 못하는 직위다.

이들의 기록물을 사초(史草)라 하여 기록된 사초에는 시비를 가릴 수 없으며, 고칠 수도 없으며 수정· 누설 시 참형에 처한다. 연산군 일기 12년 8월 14일 기록은 이렇게 말한다.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초(史草)뿐이다(人君所畏者史而已). 이렇게 기록된 책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2077책. 하루 10쪽씩 읽는다면 어림잡아 42년 6개월 쯤 걸릴 분량이다. 책 두께는 1권당 1.7cm 정도인데 일자로 쌓아 올리면 아파트 12층 높이다. 임금이 사초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함은 그리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임금이 임금 노릇 못했을 때 사초의 기록은 날선 도끼가 되어 발등을 찍을 것이다. 사관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봤다면 뭐라 기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