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김기춘 드디어…….
얼마 전 김기춘이 범죄자의 혐의로 구속, 은팔찌로 통하는 수갑을 찬 채 끌려 나오는 장면을 텔레비전 화면에서 봤다.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들어가는 순간 가정 먼저 하는 일은 항문을 까는 일이란다. 누군가에게 유쾌하지 않은 일로 허리춤을 풀고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그곳을 까 보인다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몸짓이었으리라.
평생 누군가를 잡아서 구속시키는 일에만 익숙했던 사람으로서는 죽기 전에 이런 곳에 들어올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마도 이런 곳에 들어오기가 여간 하지가 않았으리라. 그래도 속 마른 기질은 살아있는지라 청문회 자리에서 어떡하든 살아 나가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에서 “명색이 검사출신이요, 법무부장관까지 했던 자도 별거 없구먼”하는 씁쓸한 뒷맛을 느꼈다. 김기춘은 정지된 대통령 박근혜 정부에서 살아있는 권력의 1인자였으며 새누리당 전대표 김무성 의원과 새누리당 전대표 이정현 의원과 더불어 박근혜 정부의 최측근 제1조력자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물론 본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인정하지 않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본다는 말이다.
일이 이지경이 된 데는 언론의 방관도 한몫했으리라. 늘 그러하듯이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하지 않을 때 역사는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사람을 온전히 알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바닷물을 다 먹어봐야 꼭 짠 맛을 알 수 있는 것은 또 아니지 않는가.
진나라 시황제에겐 환관 조고가 있었다. 조고는 시황제 사후 시황제의 둘째 아들 호해를 황제로 섬긴다. 그리고 나라는 망했다. 이와 비슷한 일이 김기춘 일생에 벌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김똘똘이라 불렀다. 박정희 사후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김기춘은 비서실장이란 이름으로 그의 아부(阿父)가 된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무너졌다. 언론은 최순실 국정농단이라고 쓰지만 국민은 그렇게 읽지 않는다.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는 징정권(人政卷)15선인문이고험(選人門二考驗)에서 말한다. 의를 들어 불의를 살피면 권세도 두렵지 않고(…중략…) 오직 지극히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으면 밝은 하늘에 떳떳한 날을 살 수 있다(擧斯義而考驗 則權勢不足畏… 惟以至公無私 立於光天和日). 잊지마라 과거는 늘 현재에게 미래를 묻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