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구속
시대가 힘들면 사회적 약자가 당하는 체감 온도는 거대한 탁류로 엄습한다. 일제 강점기와 군부독재 유신시대를 거치면서 교육은 철저히 복종과 출세의 도구요, 통로요, 매개체가 되어 지식의 보상체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 그 중심에 법복(法服)이라는 위압의 상징인 판검사가 있다.
단 한방에 인생의 반전을 꿈꾸는 우등불가 절차탁마적 세월이라는 기약도 없는 그 가혹함 속에서 똬리를 튼 농축된 이기심으로 잉태된 기능적 권력자들. 그들은 자신이 겪어온 지난함의 시간들을 보상받기 위하여 작심이라도 하듯 안할 짓도 못할 짓도 없는 지경에 이른다.
법복이 갖는 상징성은 법은 지위고하를 무론하고 만인에게 평등함을 본(本)으로 한다. 법은 결코 누군가에게 줄을 서지 않는다. 줄을 서는 순간 법은 기울기 때문이다. 법이 기울면 법은 특정인을 뺀 만인에게 불평등할 것이고, 이쯤 되면 법은 본말의 전도다.
실학자 반계 유형원은 ‘반계수록’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개조론을 썼는데 그 책 말미에 서수록후(書隨錄後)라는 이름의 후기에서 밝히기를 천하 이치에 본(本)말(末)대(大)소(小)는 서로 나뉘어 시작되지 않는다(天下之理 本末大小 未始相離). 치(寸촌)가 잘못된 자(尺척)는 자 구실을 할 수 없으며, 눈금이 잘못된 저울은 저울 구실을 할 수 없나니 그물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데 벼리가 제구실 하는 경우는 없다.
삼성그룹 황태자 이재용 부회장이 또 끌려갔다. 그래도 명색이 굴지 재벌그룹의 실질적 오너인데 검찰에서 툭하면 오라가라하니 쪽팔림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물론 그를 보좌하는 비서진과 법률팀의 무능의 결과지만 근본 원인은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연전에 삼성가 장손 이재현 회장이 법정에서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은 것을 필두로 지체 맏상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이혼, 거기다가 늘그막에 이건희 회장의 유튜브에 뜬 논현동 안가에서의 동영상, 한 술 더 떠 맏딸 이부진의 이혼소송…. 이러한 삼류 막장드라마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온 국민들이 보면서 “별거 아니네” 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결국 이재용은 정지된 대통령 박근혜일로 구속됐고 구속이 주는 함의는 두 개로 압축된다. 박근혜를 치기위한 전진기지가 될 수도 있고 박근혜를 구하기 위한 출구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隋)나라 논객 문중자(文中子)왈 개는 주인을 위해 짖기도 하지만 주인을 위해 남을 물기도 한다.<犬吠爲其主而咬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