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거늘
공부의 끝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청운의 길과 백운의 길이다. 청운의 길은 등과해서 벼슬을 살러 가는 길이고, 백운의 길은 공부는 많이 하되 세상 꼴 보기 싫어 초야에 묻히는 길이다. 이 둘 사이의 공통점은 ‘천하에 나면서부터 귀한 자는 없다(천하무생이귀자天下無生而貴者.예기禮記)는 공자의 말이다. 이 말은 맹자에 이르러 민귀군경(民貴君輕)으로 확대 재생산 된다. 백성은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임금이 가장 가볍다(맹자왈孟子曰 민위귀民爲貴 사직차지社稷次之 군위경君爲輕맹자孟子진심하盡心下). 물론 이 말을 모두가 다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유형원은 반계수록 노예(奴隸)편에서 “천지에는 귀한 자도 있고, 천한 자도 있으니 귀한 자는 남을 부릴 것이고, 천한 자는 남에 의해 부림을 당한다. 이것은 불변의 이치다.” 라고 했다.
다산 정약용은 한술 더 떠서 목민심서 변등(辨等)편에서 일천즉천(一賤則賤), 즉 부모 중 한 사람이 노비면 그 자식도 노비가 됨을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일반 백성 대부분은 노비 신분을 면치 못한다. 서경에서는 민유방본(民惟邦本)이라 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는 말이다. 이는 백성이 그 만큼 귀한 존재라는 말인데 정작 일반 백성들은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사람대접 못 받고 사는 게 다반사다. 특히 뭣 좀 있다는 것들이 질러대는 갑질은 참으로 가관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사회 구석구석까지 돼먹지 못한 자들이 우쭐대는 그놈의 갑질 때문에. 지랄도 이보다 더할 순 없다. 그렇지만 힘없는 백성이 무슨 용가리 통뼈 뽑아내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거늘 그냥 주구장창 ‘아가리파이터’가 지꺼려 대는 온갖 욕설을 온몸으로 다 받아야하고 또 견뎌야한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티면 월급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눈물겨운 삶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거늘 사람을 그렇게 무시하고 멸시하면 나중에 그 벌을 어찌 다 감당하려고. 자기들 생각엔 천년만년 부자로 살 것 같을 것이다. 아서라. 윗물이 아랫물 되는 거 순식간이다. 본래 천것일수록 잇속에는 밝은 법이라더니만 어찌 그 말이 그리도 꼭 맞는지. 요즘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을 보면서, 과연 그들은 지금 밥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묻고 싶다. 그런 비인간적인 짓을 하고서도 말이다. 양명학자 왕수인은 전습록에서 말했다. 저자거리를 걷고 있는 저 백성들이 모두 성인(聖人)이라고. 뭇 백성이 성인의 반열까지 올랐을 때는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이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