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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병마와 사투… 하나님 손을 잡았다”

임동진 배우·목사

[용인신문] 예술가와 목회자의 두 길 인생을 동시에 걷고 있는 임동진(77). 그는 지금 현역 배우이면서 은퇴한 프리랜서 목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배우 임동진은 토지, 왕과 비, 대조영, 왕의 여자 등에서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국민배우였다. 느닷없이 찾아온 병마와 싸우면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그는 용인에 살면서 열린문교회 담임 목사를 정년이 돼 은퇴하고, 최근 다시 배우로 복귀해 연극 무대 등에서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전국의 교회를 탐방하면서 목회자로서의 활동 역시 적극적으로 이어나가며 에너지를 쏟고 있다. 배우와 목회의 길을 병행하는 배우 목회자를 자처하면서 그는 생활 속에서 혹은 예술 현장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전혀 다른 두 가지 삶이지만 어찌보면 두 개의 삶은 그에게 있어 전혀 동떨어진 게 아니다. 그의 삶은 그의 말대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연결돼 톱니가 물려가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하나님 말씀을 이야기 할 때는 목소리가 우렁찼다. 그는 인터뷰 내내 사극에서 왕의 역할을 맡았던 임동진의 모습을 연상케 할 만큼 강한 카리스마를 풍겼다. 그것은 연륜의 탓이기도 하겠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범접하기 힘든 그만의 열정이 뿜어낸 에너지이기도 했다.

 

그와 나눈 이야기 가운데 목회자로서의 삶을 중심으로 내용을 추려내 소개한다.

 

갑상선암 이어 뇌경색 ‘사형선고’… 기적적으로 의식회복 새삶
놀라운 치유 경험 신학공부 교회 개척… 신앙·예술 제2의 인생

 

-목회자의 길로 언제 들어섰나.

내가 용인 기흥단지로 이사 온지 올해로 24년 차인데 그 동안 변화가 많았다. 병마가 복합적으로 찾아와 육체적으로도 장애가 왔고, 거기서 뭔가 깨달음이 있어서 60세에 기흥구에 있는 루터신학교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개척한 열린문교회는 우리집 마루에서 시작됐다. 담임목사 10년 임기를 마쳤다.

 

-병마와의 싸움 속에서 얻게 된 깨달음이란.

2000년에 2시간짜리 KBS 라디오 아침 생방송을 3년간 했다. 생방송이니까 지방에 촬영 갔다가도 폭풍이 몰아쳐도 올라와야 했다. 도저히 피곤해서 스톱했다. 그때 기념품으로 건강 검진권을 받았다. 갔더니 피곤하지 않냐며 갑상선암이라면서 빨리 치료할 것을 권했다. 피곤한 것은 배우하랴, 교회 장로하랴, 당연한 게 아니겠냐며 의사 말을 무시한 채 해외 촬영도 다녔다. 아내가 5개월 지난 후에야 그 사실을 알고는 병원에 나를 잡아가다시피 했다. 2년 후에는 집 마루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병원에서 절대 살지 못한다며 마음의 준비와 장례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3일 만에 의식이 돌아오자 의사가 놀라면서 최종 진단하기를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 발로 일어섰다. 그때 깨달은 것은 휠체어를 안 탈 수 있던 게 하나님과 나의 공동작품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의지를 주셨고 나는 절룩거려도 절대 휠체어를 안타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조금씩 걷기 연습을 했고 어눌한 걸음걸이로 발을 질질 끌면서 병원을 나왔다. 하나님이 꽉 붙들고 계시면서 그런 걸 다 체험하게 하신 거다.

 

하나님의 시간 속에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끌고 간다. CBS 새롭게 하소서 진행을 할 때 유명한 뇌박사를 초청해 대담했는데 나한테 병원에 한번 와보라고 했다. 그분이 컴퓨터를 보고 있다가 얼굴에 예쁜 미소를 지으면서 “임 목사님, 하나님께서 수고 많이 하고 계시네요”라고 했다. 세계적인 뇌박사의 얼마나 명쾌한 명답인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나는 맨날 하나님께서 수고해주시는 덕분에 존재하고 있다.

 

-담임목사 은퇴 후의 목회 활동은.

10년 정년을 은퇴한 후 TV에 복귀해 드라마 징비록 등 두 편 정도를 했고 연극도 했다. 최근엔 낭독 공연 ‘아버지를 찾습니다’를 끝내고, 이번에 또 대학로 동양극장 소극장에서 ‘언제나 늘 함께’라는 낭독공연 연극을 한다. 그러나 나는 배우 활동만 하는 게 아니라 배우 목회자다.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사역이다. 교회라는 지정 장소, 매뉴얼에 매인 것이 아닌 영혼의 구혼을 할 수 있는 뭔가 특별한 사역이다. 내가 존경하는 이드보라라는 선교사는 미국서 교도소를 다 돌면서 마약 선교를 했다. 귀국해서 윤락녀 선교를 하고 있다. 세상에 파고들어야 된다.

 

-임동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나는 하나님이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을 주실 때까지 배우이자 목회자로, 목회자이자 배우로 가고자 한다. 두 가지가 나의 정체성이다. 배우 중에 크리스천이 많다. 뭔가 자기 마음에 걸림돌이 있으면 기도 좀 해달라고 한다. 기도해줄 때마다 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자리에서도 나를 쓰시는 하나님이시구나.

 

-목회의 방향은

오직 하나님이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봐야 하고 예수님만 바라봐야 하는 게 교회다. 이 시대는 더욱 더 하나님만 바라보고 회개할 때다. 목회자가 회개가 없으면 안된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자는 상대를 안해준다. 내 마음이 누구 때문에 불편했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기독교는 회개하는 기독교다. 이런 생활로 매일 산다.

 

-연기에 들어선 계기는.

나는 연예인이 아니라 예술가다. 중 3때 연극 콩쿨대회에서 연기상을 준 차범석 선생님이 나를 배우의 길로 가게끔 했다. 심사위원장이셨는데 연기상을 주면서 개인적으로 나를 불렀다. “너는 꼭 배우해라.” 그래서 배우가 됐다. 서라벌고 연극부에 들어갔다. 연극부가 셌다. 선후배친구 배우가 많다. 연극 기성극단 최초 데뷔 무대는 64년(내 기억은 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작품 ‘생명’에서 주인공 역이었다.

 

-방송국 입사는 어떻게 하게 됐나.

동양TV로 68년에 입사했다. 가난한 연극배우를 모면하자, 밥을 좀 먹어야 되지 않겠나 싶었다. 60년대의 연극배우는 버스표가 없어서 수유리에서 명동까지 걸어 다녔다. 나도 수색 쪽에서 명동까지 걸어 다녔다. 입사 심사할 때 이병철 회장이 탤런트도 다 관상을 봤다. 내가 이병철 회장 돌아가셨을 때 관 앞에서 조시를 읽었다. 그때 이맹희, 이창희, 이건희 회장 셋이 앉아 있는데 슬픔보다는 뭔가 긴장돼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기독교 영화를 많이 찍은 것으로 안다.

그때는 TV에서 인기 있는 배우를 영화시장에서 불렀다. 시선이 집중됐다. F학점의 천재들을 비롯해 아내 모르게도 몇 편의 영화를 찍다가 아내가 울면서 그만두라는 소리에 스톱했다. 그후 줄곧 기독교 영화를 찍었다. ‘하늘로 가는 밝은 길’을 비롯해 김진흥 목사가 빈민 선교한 ‘새벽을 깨우리로다’ 등을 찍으면서 목회자들의 실체와 신앙의 본질을 깨닫게 됐다. 그럼에도 내가 부족해 병마를 주심으로써 길을 인도하신거다.

 

-코로나19 시대에 대해 한 말씀.

지금 지구촌이 끝자락에 와 있다. 첨단이라는 한자를 보면 최고가 아니라 끝이라는 의미다. 창조된 자연 만물을 우리가 너무 멋대로 다뤘다. 기독교인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해야 하고, 그걸 보고 세인들도 불법, 편법 모든 인생을 다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교단에 대해 한 말씀.

교회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수님, 하나님이 보이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한경직 목사님은 수행원도 없이 소탈하게 다니셨고, 이재철 목사님 등 이런 분들의 발뒤꿈치만 쫓아가도 목회에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