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2020년 판사 문유석은 법복을 벗었다. 변호사가 됐다면 지금보다 더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의 미래. 하지만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음껏 여행하며 에세이를 쓰던 것을 부러워했기에 두 번째 인생으로 작가의 길을 택했다. 재직 당시에도(2014년 8월) 세월호 관련 기고문을 발표했다가 직장에서 불편한 처지에 놓였던 문유석이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문유석의 개인적 가치관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산문집인데 올해 특별판으로 또 출간되었다. 대개의 산문집이 그러하듯이 무엇을 보고 가슴이 떨렸는지 무엇에 분노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은 무엇이고 은근한 욕망은 무엇인지 열거되고 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며 시대가 달라져 젊은이들에게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카산드라의 예언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을 이야기한다. 지성인이라 불림 받는 이들의 에세이가 다 비슷하겠지만 ‘그럼에도’를 말하는 저자는 책 속에서 지성인의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강조한다. 힘을 가진 이들의 작은 나눔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과 위로가 될 수 있음도 말한다. 문유석은 과거 법조인들이 누린 특권이 거의 사라지고 오직 하나가 남았는데 이를 ‘그
[용인신문] 2022년 2월 26일, 한국문학의 큰 별이었던 이어령은 89세를 끝으로 어머니가 계신 먼 곳으로 길을 떠났다. 문학을 공부했고 수많은 저작물을 남겼으며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이어령의 저작 중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는 저자가 길어 올렸던 문학의 원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산문집이다. 필자는 자신의 문학을 낙타와 선인장의 언어에 비유한다. 사막을 지나는 낙타는 하늘을 보기보다 긴 속눈썹 아래 자신의 심연에 있는 꿈을 보며, 선인장은 가시 아래 강을 품고 별이 흐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어령에게 어머니는 물의 원천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 이어령의 어머니는 수술을 위해 서울에 가셨다. 병문안 오신 손님이 당시엔 귀했던 귤을 선물했는데 어머니는 그걸 드시지 않고 어린 이어령에게 보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귤이 도착할 즈음 어머니의 유골도 함께 도착한다. 그래서인지 산문은 온통 깊은 회한(悔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사유를 확장해 나간다. 어머니와 함께 기억하는 ‘책’, ‘나들이’, ‘뒤주’, ‘금계랍’, ‘귤’, ‘바다’. 바다(海)는 어머니(母)라는 말을 품고 있다 거의 한 세기를
[용인신문] 기억은 사실보다는 감정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있다. 『책들의 부엌』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힘든 감정들이 기억을 지배한다. 하지만 배경이 되는 소양리 북스 키친을 방문하고 나서는 그 기억을 생을 위한 따뜻한 에너지로 대체하고 떠날 수 있게 된다. 배경이 되는 소양리는 마이산이 보이는 어느 시골이다. 그곳에 식당을 차린 사장과 스테프그리고 방문자들은 하나같이 저마다의 사연으로 생의 방향과 목적을 잃은 상황이었다. 어쩌면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결말을 향해 가고 있어서 특별할 것 없는 작품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가랑비와 같다. 어느 새 다인의 공허감에 공감하게 되고 마리의 거짓말을 이해하게 된다. 독자는 등장인물의 옆에 있는 스테프가 되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스테프가 되어 마치 바느질을 하듯 한땀 한땀 생각을 살피고 마음을 살피고 다음 걸음을 걷게 할지도 모른다. 눈앞에 북스 키친 통유리 바깥에 매화가 보이고 밤늦게까지 담소를 하는 방문객들의 웃음소리가 채워지고 빗소리가 눈 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북스 키친에서 나누는 1년 동안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휴식과 추억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들게
[용인신문] 전래동화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옛날이야기를 말한다. 우리 옛이야기를 기록한 최초의 3대 동화집은 『조선동화집』(조선총독부, 1924), 『조선동화대집』(심의린, 1926), 『조선전래동화집』(박영만, 1940)이다. 『조선동화집』은 최초의 기록이긴 하지만 당대 일본인의 시각에서 편집되었다. 『조선동화대집』은 한국어로 기록된 최초의 전래동화집이지만 근대적인 문물이 등장해 옛이야기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조선전래동화집』은 박명만이 채록한 이야기 75편이 실려 있다. 도서는 저술 동기와 저자 소개로 시작되어 75편의 이야기가 소개되며 마지막 부분에는 원문 영인본을 싣고 있다. 우리 이야기인데도 번역자가 필요한 이유는 오래 전 기록된 문헌이 현대인이 이해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야기마다 채록한 지역 이름을 기록하기도 하고 저자가 자신의 기억을 참고했다고 적기도 한다. 60여 편의 이야기들은 북한의 옛이야기이다. 어떤 이야기는 근원적인 인간의 마음 탐구에 대한 열정이 드러나며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구술하는 현장감을 살려 표현했다. 민담이 갖는 특유의 재미를 찾는 즐거움도 있다. 전래동화의 변화무쌍한 변화를 관찰하게 되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기도 하
[용인신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실학자였다. 남인 출신으로 성호 이익의 영향을 받았으며 정조 재위 당시 과학자의 면모도 보였다. 이 때 관심을 갖게 된 천주교로 인해 19년의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유배는 거대한 저술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다산이 예순에 이르러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기 위해 적은 글을 엮어낸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인생을 살고도 예순에 “자신을 잃은 자”라고 적고 있는 다산의 글귀를 인용하며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탐구해 보는 책이다. 다산의 습관은 삶 속에 습관이 된 관성을 버려야 한다고 요구한다.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만큼 거리가 먼 것이 없다는 배움의 이야기는 독자의 지금을 살피게 할 것이다.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 어른이라는 말은 어른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재능을 발휘하는 데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니 꾸준함을 유지하라는 말은 정권이 바뀌는 시기에 다시 곱씹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말은 무겁고 울림은 크다. 다산의 습관에 관한 조언들은 어찌보면 자기계발서에서 익히 발견했던 것들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의 말이 자신의 삶으로부터 비롯되
[용인신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가난했던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다.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던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겨우 프랑스 기자협회의 공인을 받은 저널리즘 부문의 그랑제콜을 졸업하고 기자가 되었다. 30년간의 기자생활 후 은퇴한 그는 실크로드를 걷기로 마음먹고 봄부터 가을까지 길을 걷는다. 그 과정을 적은 책이 『나는 걷는다』이다. 세 권으로 출간된 책의 인세는 쇠이유(Seuil)라는 비영리재단의 재원으로 쓰이고 있으며, 재단은 프랑스 비행청소년이 2000km 걷기에 참여해서 성취감과 자존감을 스스로 갖고 바람직한 시민으로 편입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나는 걷는다』는 다른 여행 에세이와 달리 사진이 없다. 편집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직 길만이 중요할 뿐이며, (중략) 길이란 게 걷는 사람의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그가 세계에-그리고 자신에게-부여하는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시선이 물질화된 것임을 알고 있다. 이를 인식하는 데에는 말만으로도 충분하다.”(8쪽) 60세라는 나이는 은퇴 후 풍요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기였다. 여정엔 인간이나 자연에서 오는 위협도 존재했다. 하지만 저자는 마르코폴로가
[용인신문]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라는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폭풍우) 에서 차용해 왔다. 템페스트에는 미란다라는 여성인물이 ‘아름다운 세계’라고 하는 말이 나온다. 동생에게 쫓겨난 아버지와 외딴 섬에서 살던 미란다는 난파선에서 내린 사람들을 보며 아름답다(Brave New World)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해치려고 했던 인물들이니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다. 멋진 신세계도 제목과 내용이 아이러니한 관계에 있다.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인간적인 가치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작품속에서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세계관은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이다. 이를 위해 개별성이나 다양성이 무시되고 인공수정과 교육을 통해 계급을 유지한다. 충만한 사랑으로 태어나야 할 아이들을 공장에서 생산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야만으로 치부한다. 소설에서 아이들이 꽃과 책을 증오하게 만드는 훈련과정은 주도면밀하다. 지배계급을 만드는 과정 역시 정교하게 설계되어 오랜기간 빈틈없이 진행된다. 효율이 중요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수단으로 쓸 수 있다. 목적을 위한 수단이 궁극적으로 멋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을 보여준
[용인신문] 메타버스는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라는 미국의 SF작가가 쓴 소설 『스노우 크래시(Snow crash)』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가상세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소설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원』(2018)은 ‘오아시스’라고 하는 가상세계를 실감나게 보여 주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더욱 중요한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저자는 메타버스를 ‘나를 대변하는 아바타가 생산적인 활동을 영위하는 새로운 디지털 지구’(38쪽)라고 말하며 메타버스의 세계관을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필자는 메타버스의 특징을 다음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가상과 현실의 기억과 정보가 연결되고, VR혹은 AR 등의 기기를 이용해 실재감을 끌어올린다. 가상의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한 화폐는 현실과 상호 연관되며, 여러 사용자가 동시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메타버스가 현실 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메타버스에 시중은행이 가상점포를 열기 시작했다는 것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하다. 게임은 이미 메타버스의 개념을 구현하고 있다. 넷플릭스 등과 같은
[용인신문] 『동물농장』, 『1984』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조지 오웰의 산문집 『코끼리를 쏘다』는 오래 전에 출간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앞의 현실을 살피게 하는 도서이다. 전체주의도 폭군도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는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 다섯 부에 걸쳐 소개되는 조지 오웰의 산문은 식민통치에 대한 환멸과 도시에 사는 약자들의 모습, 그의 문학에 담긴 정치성, 유럽 문학에 대한 조지 오웰의 생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어려서부터 뭔가 글을 열심히 적은 조지 오웰은 일찍부터 자신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소명의식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글을 쓴 동기를 크게 네 가지로 소개한다. 작가로 살고자 하는 염원과 예술가로서 미학적 성취를 이루려는 목적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 · 정치적 충동에서 비롯된 글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지 오웰은 자기 자신에게 냉철했다. “나의 작품을 돌이켜보건대, 정치적 목적이 결여 된 곳에서 내가 한결같이 화려한 문체, 의미 없는 문장, 쓸모없는 장식적 형용사 등에 유혹당한 생명 없는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90쪽)고 말하며 자신의 글을 반추하기도 했을 정도다. 산문집은 소설과 달리 작가 내면의 실체
[용인신문] 덴마크 출신의 작가 안데르센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은 2년에 한 번씩 선정된다. 이 상은 작가의 특정 작품이 아닌 전반적인 작품을 검토해서 선정하기 때문에 받기가 매우 어려운 상이다. 그런 상을 우리 이수지 작가가 받았다. 이수지 작가의 약력을 보면 그의 글로벌 역량이 아주 오래 전부터 발휘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수상은 한국 문화가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의 최근 작품 중 『여름이 온다』는 2022년도 볼로냐에서 열린 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받았다. 『여름이 온다』는 이수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그림책이다. 음악은 이수지의 상상을 자극하는 또 다른 길이었다. 가족들과 여름날 마당에서 했던 물놀이의 추억이 음악과 어우러져 한 판 마당놀이를 하듯 그림책에 펼쳐진다. 비발디의 ≪사계≫중 여름은 현악기들의 연주에 의해 지면에서 화창한 여름날과 보슬비와 비 바람 천둥 번개와 같은 것들로 변신한다. 거친 선이 주는 비바람이나 독특한 색이 주는 싱그러움이 돋보이기도 한다. 음악에 흠뻑 젖은 등장인물은 여름날 물과 비와 놀이가 하나되어 한판 마당놀이를 보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의 리듬
[용인신문] 김숨은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나 바지런히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다수의 수상경력(허균문학작가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은 그 노고의 결과물일 것이다. 대선과 강원지역 산불로 나라가 들썩이는 시간에 우리가 잊은 것은 무엇일까? 김숨의 『듣기 시간』을 들여다보며 3월을 생각한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에 위인부였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조사하는 과정을 소설로 썼다. 문제는 피해자들의 증언 녹취에 구체적인 언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확한 기록을 위해 증언을 녹음했다. 녹화된 테이프의 재생시간은 60분이지만 그 시간 내내 녹음이 되어 있는 말은 인터뷰를 하러 간 사람의 말이 대부분이고 정작 피해자의 말은 없다. 침묵을 녹음했을 뿐이다. 자신의 말을 지우고 싶지만 “그럼 내 목소리와 함께 녹음된 그녀의 침묵도 지워지니까, 내 말보다 그녀의 침묵이 중요하니까, 그녀의 침묵은 발화되지 못한 말이기도 하니까.”(9쪽) 지울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의 시간관념에선 일제강점기가 과거의 일이지만 소설 속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현재는 여전히 과거의 고통이 머물러 있다. 『듣기 시간』은 작은 숨소리조차도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가
[용인신문] “얼마나 힘들어야 웃음으로 고통을 포장하게 될까”(208쪽) 10대의 이야기 이지만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올해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받은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드라마처럼 펼쳐놓는다. 등장인물은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가족에게 더욱 집착하기도 하고, 반대로 그것 때문에 가족과 철저하게 거리두기를 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마찬가지다. 곪은 상처는 걷어내야 새 살이 나듯이 과거의 사건과 감정으로부터 얽힌 상처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 결국 맺힌 감정의 응어리들을 훌훌 풀어내고 단단한 딱지를 만들어낸다. 이제 곧 새 살을 약속하는 딱지이다. 청소년소설에서 가족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는 흔한 편인데 『훌훌』은 소재 면에서 독특하다. 소설은 주인공 유리의 복잡한 상황을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며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있다. 다소 신파적인 할아버지의 상황을 개성 있게 만드는 건 할아버지의 단순 명료한 대사 때문이다. 유리가 서정희씨라고 부르는 엄마의 생애를 ‘나쁜 사람’으로 일갈하지 않는 작가의 마무리도 훌륭하다. 진지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고등학생들의 묘사도 치밀하다. 단숨에 읽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