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한 부부가 맹렬한 싸움 끝에 서로 말을 하지 않고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글로 쓰기로 했다. 다음날 출장을 가게 된 남편은 새벽차를 놓칠까 봐 어쩔 수 없이 부인에게 “내일 아침 4시에 깨워 줘요.”라고 적은 쪽지를 건넸다.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니 4시는커녕 벌써 7시가 지나고 있었다. 화가 잔뜩 난 남편이 부인을 깨우려고 하는데 자기의 베개 옆에 종이쪽지가 보였다. “여보, 일어나세요. 벌써 4시예요.” 부부가 몸과 마음이 따로일 때 일어날 수 있는 우스갯소리다. 그렇다.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이 찾아온다.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경청하듯이 자신도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라는 의미의 사자성어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있다. 이 말은 사서 가운데 맹자(孟子)의 ‘이루(離婁)’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설과 삼경 가운데 ‘주역(周易)’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설이 있다. ‘역지즉개연’은 처지나 경우를 바꾼다 해도 하는 것이 서로 같다는 말이라고 한다. 얼마전 개원한 21대 국회를 보면서 더욱 생각나는 말이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는 이유 등은 아예 듣지도 않고 자기의 주장만 앞세워 상대를 굴복시키려 애쓰는 것
생선구이·젓갈정식… 모처럼 '입안의호사' [용인신문] 좋아하지만 가까이하기 쉽지 않은 생선구이. 생선회는 제법 먹을 일이 있지만, 구이는 밖에서도 좀처럼 먹기 힘들죠. 더욱이 집에서는 준비부터 먹고 난 후의 뒤처리까지 만만치 않아 한 달에 한 번도 먹기 어렵더라구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얼마 전부터 용인에 피자 구워내는 화덕을 이용한 생선구이집이 몇 군데 생겼어요. 웨이팅이 아주 심한 곳도 있고, 대부분 인기가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오늘은 처인구 와우정사 가는 길가에게 위치한 ‘고등어 식당’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오픈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근처 동네 분들에게는 이미 입소문이 나서 인기가 많고, 와우정사로 나들이를 오신 분들도 많이 들리십니다. 식사시간에는 제법 사람들이 북적거릴 정도랍니다. 와우정사 가는 찻길가에 위치해 있어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은데 실내가 그리 넓지 않고 주차 공간도 많지 않음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크지는 않지만 새하얀색 간판이 눈에 쏙 들어오구요, 실내도 오픈 주방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생선 모양의 메뉴판이 아주 귀여웠습니다. 메뉴는 딱 네 가지로 고등어, 삼치, 꽁치, 갈치인데 가격은 11000원에서 15000원 선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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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예로부터 용인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조선 초기에 홍귀달은 <용인신정기>라는 글에서 용인은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이르는 길의 목이라고 하였다. 조선후기의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제4대로의 노정은 한양에서 출발하여 한강-판교-용인-양지-광안-충주로 이어지고, 다시 조령을 넘어 유곡-낙동진-대구-부산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용인은 전국 도로망의 요충지였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유일한 도시가 용인이다. 제2경부고속도로와 새로 조성되는 서울-지방간의 내륙도로는 용인을 빗겨갈 수가 없다. 결국 땅의 쓰임새는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천이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달라질 이유가 없다. 현재의 용인은 조선 초기에 용구현과 처인현,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용인군과 양지군이 병합되어 형성된 도시이다. 구성 지역과 양지 지역의 중간쯤 되는 곳에 인위적으로 조성된 셈이다. 이후 동부권과 서부권의 도시 형성 과정에서 격차가 커지다 보니, 균형 있는 발전이 정책과제였다. 지금의 용인시 청사 위치를 용인의 중앙에 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용인시정 발전 계획에서 ‘균형’과 ‘조화’ 가운데 굳이 하나만 선택
[용인신문] 최은진의 BOOK소리 166 영국 화가의 눈에 비친 한국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저자 : 송영달 /출판사 : 책과함께/ 정가 : 25,000원 1920년대 초 서울에서는 신기한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을 방문한 영국 화가가 자신의 눈에 비친 한국을 그린 작품들을 선보인 것이다. 3.1운동 직후였던 1919년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엘리자베스 키스. 화가의 눈에 비친 한국는 대체 어떤 풍경이었을까? 우리보다 더 우리를 잘 알고 있는 듯 그녀의 그림은 책장을 여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눈을 뗄 수 없을만큼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여행자의 시선을 뛰어넘어 가까운 이웃이 되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과 깊은 울림이 담겨있다. 이 책은 단순히 예술가의 여행기가 아니다. 진심이 담긴 예술작품이 주는 감동과 함께 일본의 잔혹한 식민지 정책을 고발하고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역사적 자료의 역할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어떤 길고 자세한 설명보다 한 장의 그림이 훨씬 더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기고 글로 전해주는 역사서보다 소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림은 전달력과 감화력에서 글로 된 기록을 능가하고, 글은 관찰자의 관점과 글의 표현력이라는 한계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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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 . 매콤달콤 . 불향고기 . 국시 한그릇 '뚝딱' [용인신문] 이름만 듣고 마음이 끌렸던 곳이 있었습니다. 특색 있는 메뉴들이 있다는 걸 알고 난 뒤에는 한층 더 궁금했던 곳. 용인시 보정동 뒷골목에 자그마하게 자리 잡은 ‘장국시와 온반’입니다. 위치는 보정동 주민센터 맞은편 골목, 마트 바로 옆자리. 상점들이 즐비하기도 하고 간판이 크지 않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직사각형 모양의 크지 않은 실내는 구석구석 안사장님의 손길로 잘 꾸며져 있고, 오픈된 작은 주방도 아주 깔끔하더라구요. 테이블에 앉자마자 예쁜 도자기 주전자에 물을 내어주시는데 또 한 번 점수 플러스! 특이한 메뉴들이 많은 곳이라 선택 장애가 있어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골라 먹는 재미가 있었어요. 3년 이상 숙성한 집 된장 육수로 만들어진 된장 국시, 칼칼한 고추장 국시, 직접 띄운 청국장으로 끓여낸 청국장 국시, 매콤달콤 제육볶음 국시는 ‘장국시와 온반’에서 처음 본 메뉴들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메뉴로는 들깨 옹심이 국시, 잔치 국시, 콩국시, 판 메밀 국시, 비빔 국시, 떡만둣국, 왕만두가 있구요. 밥으로는 제육덮밥, 불고기정식, 강된장비빔밥과 된장 육수로 만든 장온반이 있습니다. 모든
[용인신문] 10년 전 필자는 강남역 카페에서 중년 남성 여럿이서 하는 얘기를 엿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의 넥타이와 손목시계에서 돈 냄새가 났다. 그들은 사업얘기를 했는데 특히 자선사업에 대해서였다. “돈 벌려면 자선단체 세우는 게 최고”라고 그들은 말했다. 영화산업에 대한 얘기도 했는데 “김기덕은 안 되고 봉준호에게 투자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자 필자는 10여 년 전에 강남 어느 카페에서 엿들은 말들이 떠올랐다. 인간이 모이고 돈이 모이는 곳에 티끌 하나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의연의 오랜 활동과 노고를 알고 있기에 실망도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알고 싶다. 과연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대로 할머니들이 이용당한 것인지, 아니면 언론과 함께 누군가 이용수 할머니를 부추기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 저의가 무엇인지. 처음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라고 신고했을 때 “저는 피해자가 아니고 제 친구”라고 했다는 것이 사실인지도 궁금하다. 만약 <정의연>을 고발한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윤미향 이사장은 모든 것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설령 정의연의 위법행위가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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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30년 전 중국 둔황에 처음 갔었다. 고비사막이 펼쳐지며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의 관문, 오아시스 도시가 둔황이다. 발이 푹푹 빠지고 미끄러지기도 하는 사막을 걷고 또 걸어 모래산 명사산에 올랐다. 서역 하늘과 사막을 아득히 물들여가는 노을도 보았다. 그러다 해 지면 도심으로 돌아와 야외 무도회장을 구경하곤 했다. 극장 앞 조그만 광장에 남녀노소들이 모여들어 밴드 연주에 맞춰 춤을 춘다. 여럿이 군무를 추기도 하고 또 블루스 같은 쌍쌍의 춤을 추기도 한다. 러시아나 몽골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예의 TV 화면 속 평양도 그렇고. 그런 무도회를 며칠간 밤마다 구경하며 황량한 사막 가운데 있는 조그만 오아시스 도시에서 인간과 사회와 문화, 그리고 예의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블루스를 추면서 가슴이 닿을 듯 말 듯한 적당한 거리 유지가 그리움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낳고 또 야만이 아니라 문화와 문명을 낳은 거라고. 이런 거리에 대한 실감적 명상을 위해 그 후로도 대여섯 차례 실크로드 사막기행을 해오고 있다. 사그라지던 코로나 19 집단전염 불씨가 서로 몸 부비고 소리소리 지르며 춤추는 이태원 클럽발로 되살아나고
[용인신문] 최은진의 BOOK소리 164 남겨진 자들을 위한 기록 아침의 피아노 ◎저자 : 김진영 /출판사 : 한겨레출판/ 정가 : 13,000원 피아노 선율처럼 따뜻한 문장은 힘이 세다. 그 사람이 떠난 후에도 살아남아 우리를 그곁에 머물게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남겨두고 간 최후의 기록이라면 더욱 그렇다.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이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전까지 병상에서 적어 두었던 글은 그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이 되었다. 책의 끝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 끝을 알고 시작한 독서이기에 한 문장 한 문장 소중히 아껴가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는 이제 “아침의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 작은 사치를 더 이상 부릴 수 없게 되었지만 독자인 우리는 음악보다 힘센 치유의 문장을 듣는 사치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짧고 간결한 말이 불러오는 마음의 파장은 크다. 흔한 투병 일기나 사적인 기록으로 끝나버렸을 수도 있었을 그의 글은 우리의 삶을 회고하게 만든다. 철학자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한 사람의 부재가 남길, 현실적인 슬픔이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외출 준비를 하는 아내를 보며 “이 잘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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