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22 시소의 고도(高度) 최서진 한 쪽이 높아지고 한 쪽이 기울어지는 놀이 소화되지 않은 높이가 허공에 걸렸다 결의하듯이 우리가 올라 갈 수 있는 빨간 지붕은 몽상이라는 말 슬픔의 나라로 신발을 벗고 떠나는 유령들처럼 인간은 높이를 갖게 되기까지 두발이 바닥을 모를 때까지 다리를 길게 뻗으며 환상이 깊어진다 종일 걸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아름다운 놀이터 우리는 자주 어지럽다 오늘 밤 기다림에 목매다는 당신들을 초대 할래요 죽도록 나를 회복하기 아무것에도 그리고 누구에게도 노예 되지 않기 하염없이 스프링처럼 높이를 좋아해 -------------------------------------------------------------------- 시소, 높낮이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놀이. 우리는 도처에서 “한 쪽이 높아지고 한 쪽이 기울어지는 놀이”를 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A에게는 흥미롭고, B에게는 슬픈 놀이가 되겠지요. 국가와 국민, 그들과 이들, 너와 나, 나와 나라는 관계. 문제는 모두 다 “결의하듯이” 임하는 이상한 놀이라는 사실이지요. 시인이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올라 갈 수 있는 빨간 지붕”이, “몽상이라는 말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1 국수 백석 (……)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새해가 밝았습니다. 시로 쓰는 첫 편지는 백석의 ‘국수’ 이야기 입니다. 시절이 하 수상한데 웬 국수인가 물으신다면 어찌할까요. 이럴 때 일수록 국수 나눠먹는 풍경에 대해 조곤조곤 들려드리고 싶어집니다. 춥고 지치고 배고플 때 국수 한 그릇과 마주하게 되면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마음이 먼저 말하지요. 그 순간만큼은 진수성찬보다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이 반갑지 않겠습니까. 겨울밤 “쩔쩔 끓는 아르궅(‘아랫목’의 평안 방언)”에서 들려오는 후루룩 후루룩 소리, 그 맛있는 풍경. 하 수상한 시절일수록, “조용한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