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백석
(……)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새해가 밝았습니다. 시로 쓰는 첫 편지는 백석의 ‘국수’ 이야기 입니다. 시절이 하 수상한데 웬 국수인가 물으신다면 어찌할까요. 이럴 때 일수록 국수 나눠먹는 풍경에 대해 조곤조곤 들려드리고 싶어집니다. 춥고 지치고 배고플 때 국수 한 그릇과 마주하게 되면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마음이 먼저 말하지요. 그 순간만큼은 진수성찬보다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이 반갑지 않겠습니까. 겨울밤 “쩔쩔 끓는 아르궅(‘아랫목’의 평안 방언)”에서 들려오는 후루룩 후루룩 소리, 그 맛있는 풍경. 하 수상한 시절일수록, “조용한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국수 면발을 말아 올려야 합니다.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사람을, 시절을 꿈꾸며 올 한 해 당신께 드리는 편지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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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부터 <시로 쓰는 편지>를 연재하는 이은규 시인은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시집으로 ‘다정한 호칭(문학동네)’이 있습니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 한양대 기초융합교육원 강의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