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최정례 내 피의 반은 할머니 피다 허리가 기억자로 꺾였던 할머니 뼈는 내 굽은 등뼈가 되었다 나를 안아준 나를 팽개친 내 뺨을 갈긴 아들이 내 속에 함께 산다 내 속에서 국을 끓이는 이 못을 박는 이 불을 피우는 이 할머니다 창 아래 오종종 피어난 채송화 내 눈에 이쁜 것도 촛대를 닦아 꽃불을 피우던 할머니 피 때문이다 할머니 죽던 날 할아버지 마당만 쓱쓱 쓸었다 한다 억울하게 능멸당하면 벌레가 되어 울다가 독버섯으로 피었다가 뱀처럼 늘어지고 싶은 거 할머니 때문이다 (하략) 최정례는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시와는 거리가 멀다. 난해하고 다층적이고 산문적인 요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 20년 후에 낸 『붉은 밭』은 삶의 현장을 깊이 있게 응시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지극한 껴안음이 미덕인 시집이다. 「피」는 할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신에 대한 노래다. ‘여자의 일생’을 들여다보게 하는 시편의 곳곳에는 그녀와 할머니가 얼마나 닮았는지, 사는 모습이 어떻게 빼다 박았는지를 용기 있게 고백해 읽은 즐거움과 삶의 환희와 상황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 할머니 뼈가 그녀의 굽은 등이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기쁘다 천양희 바람결에 잎새들이 물결 일으킬 때 바닥이 안 보이는 곳에서 신비의 깊이를 느낄 때 혼자 식물처럼 잃어버린 것과 함께 있을 때 사는 것에 길들여지지 않을 때 욕심을 적게 해서 마음을 기를 때 슬픔을 침묵으로 표현할 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자유로울 때 어려운 문제와 답이 눈에 들어올 때 무언가 잊음으로써 단념이 완성될 때 벽보다 문이 좋아질 때 평범한 일상 속에 진실이 있을 때 하늘이 멀리 있다고 잊지 않을 때 책을 펼쳐서 얼굴을 덮고 누울 때 나는 기쁘고 막차 기다리듯 시한 편 기다릴 때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 쓰는 일일 때 나는 기쁘다 천양희는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녀의 시가 절정을 이루었던 『마음의 수수밭』을 읽고 가슴 먹먹했던 독자들의 기억이 있다. 절망을 살아왔던 그녀의 시편들은 아리고 고통스럽고 비장했다. 이제는 일흔을 넘긴 세상살이다.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순해지고 아련해졌다. 그렇다고 그녀가 모든 욕망을 놓은 것은 아니다. 시인은 욕망을 버린 사람이 아니라 시라는 욕망에 끝까지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맞다. 참으로 작고 사소한 것들에 기쁜 그녀는 ‘사는 것에 길들여지지 않을 때’
달 구두 신영배 버려진 날에는 집을 지나 더 걸었다 발은 백지가 되었다 물을 건넜다 구름을 딛고 나무에 매달렸다 몰에 빠져 죽은 여자를 오래 들여다 보았다 새들을 따라 날았다 모래 언덕 위에 앉았다 백지를 읽었다 더 걸었다 뒤꿈치가 부풀었다 다 갈었다 물집을 키웠다 밤을 기다렸다 떠올랐다 신영배는 2001년 『포에지』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녀의 시세계는 여성성의 섬세한 세계를 독자들에게 제시했었다. 여성적인 감각과 상상력은 잔잔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거느려 왔던 것이다. 그녀의 시에 나타나고 있는 키워드는 물, 그림자, 몸, 소녀, 달 등이다. ‘달 구두’는 달과 구두라는 의미다. 달은 여성성의 상징으로서 걷고 있거나 날아다니거나 앉아 있어가 들여다보는 시적화자를 비추는 역할로서의 달이다. 달은 어둠을 밝히는 신성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달빛 아래 드러난 물에 빠져 죽은 여자는 죽은 자의 모습이 아니라 잠든 자의 모습으로 읽힌다. 시적 화자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구두는 여자를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역할로서의 구두다. ‘더 걸었다’는 문장은 뒤꿈치가 부풀었다는 문장을 이끌어낸다. 걷는 것이 운명인, 물집을 키우는 여자는 자학의 고통을 즐기는 여자다.
빛에 관한 연구 하재연 초가 완전히 녹아버린 후 촛불의 빛은 어떻게 되었는지 일요일의 흰빛이 월요일 쪽으로 사라져갈 때 빛이 사라진 지구가 혼자 돌고 있는 밤을 생각한다. 지구는 그때부터 처음의 방식으로 고독해지겠지. 굿바이, 하고 인간들에게 인사를 하고 정말로 우주적 회전을 하게 될 것이다 빛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묻지 않고 빛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연구하는 사람들을 사랑한 적이 있다. 그도 빛과 함께 사라져서, 우주적인 안녕을 해야만 했고 나는 다시 먼지처럼 이곳저곳에 묻어 있다가, 쓱 닦이곤 했다 흘러넘쳤던 빛의 입자들은 공중으로 높이 올라가다 생각난 듯 한 번 반짝였다. 그리고 나서는 영원히 보이지 않는 음이 되어 세계의 투명한 공기를 짙게 한다 하재연은 2002년 문학과사회 제1회 신인문학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녀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시공간 개념을 끊어내고, 그 사이에 벌어진 틈 속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흡수하거나 뒤섞는 것으로 작은 우주를 완성한다. 그녀의 세계에서 ‘안녕’을 우리가 본래 알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녀만의 ‘우주적인 안녕’이기 때문이다. 하재연이 독자들에게 건네는 ‘안녕’은 전혀 다른 의미들을 불러들이며
돌의 뼈 곽효환 돌의 뼈를 본적 있다 들녘 가득한 감나무 황금색으로 물드는 청도읍성 언저리 석빙고 수 백년 풍장에 홍예虹蜺로 남은 돌의 뻐대 돌벽 틈새로 혹은 경사진 돌바닥 배수구 따라 물과 풀과 흙이 들고 날 때마다 돌들은 어깨를 걸고 몸을 붙였을 게다 많은 것들이 맺히고 풀리고 흘러갈 때마다 더 가까이 더 깊숙이 서로가 서로의 몸으로 파고들며 견디어온 돌의 뼈대는 단단한 시간의 문양이 있다 수많은 바람이 실어 오고 간 풍경과 삶이 물결치는 세월의 무늬가 있다 곽효환의 시선은 오래되고 아름다우며 눈물겨운 것들에 머문다. 그가 북방에서 더 북방으로 혹은 더 남방으로 이동한 결과다. 그의 시선의 이동은 어법과 이미지의 변화를 가져온다. 시적 혁명이라고 말해야 될 듯한 변화다. 그는 지금 청도읍성에 홍예로 남은 돌다리를 보고 있다. 아니다. 무지개처럼 걸쳐 있는 돌의 뼈를 보고 있다. 돌과 돌의 뼈는 엄청난 이미지의 차이다. 돌의 뼈에는 시인의 숨결이 있다. 돌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시인의 간절한 눈빛이 어려 있는 것이다. 돌다리의 틈새로 물과 풀과 흙이 들고 날 때마다 돌들은 어깨를 걸고 몸을 붙였을 것이라고, 많은 것들이 맺히고 풀리고 흘러갈 때마다 돌들은
비참한 저녁 식사 세사르 바예호 언제까지 우린 멍에를 써야만 할까. 불쌍한 무릎을 뻗을 수 있는 모퉁이는 어디에 있을까 언제까지 우리에게 양식을 주는 십자가는 노를 멈추지 않을까 언제 까지 병든 우리는 의문부호를 달아야 할까 우린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배가 고파 밤을 새는 소년의 고통스런 얼굴로. 언제일까, 영원한 아침의 언저리에서 우리 모두 함께 아침 식사를 하게 될 그날은 결코 데려와 달라고 하지 않은 이 눈물의 계곡에 언제까지 머물러야 하는 걸까 팔꿈치를 괸 채 눈물로 목욕한 패자는 머릴 숙이며 묻는다, 이 만찬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 어둠 속 의 그 존재, 알 길 없다 이 만찬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바예호는 페루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통 받던 인디오들의 처지를 안타까운 눈으로 보고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시를 썼다. 바예호가 사망했을 당시 체 게바라는 겨우 아홉 살이었고 두 사람이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바예호는 체의 첫번째 부인이자 그로 하여금 사회주의에 눈을 뜨게 해준 일다 가데아와 연애 하던 시절 함께 즐겨 읽었던 시인이며 체의 녹색 노트에 가장 많이 필사된 시인이다. 「비참한 저녁식사」는 사회의 불합리 속에 고통 받
땀과 채찍 니콜라스 기옌 채찍, 땀과 채찍. 태양은 일찍 맨발의 검둥이를 깨우고, 발가벗은 그를 또 농장에서 만났다. 채찍, 땀과 채찍. 바람은 소리치며 지나갔다. -손마다 검은 꽃이네! 피가 그에게 말했다: 자, 가자! 그가 피에게 말했다: 자, 가자! 맨발에 피투성이가 떠났다. 사탕수수밭은 떨면서 길을 내주었다. 하늘은 숨죽이고, 하늘 아래 그 노예는 주인에 의해 피에 물든 그 노예는. (........) 쿠바의 시인 니콜라스 기옌은 처녀시집인 『손의 모티브 Motivos de son』와 『손고로 코송고 Sóngoro cosongo』를 발표하며 흑인문학의 기수가 되었다. 흑인적 어법을 구사하며, 리듬감과 정감이 넘치는 그의 시는, 아프리카 흑인 전통의 풍부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쿠바 흑인의 고난 받는 삶을 조명함으로써 학대받은 흑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했다. 잘 자란 사탕수수가 평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잎을 서걱대며 흑인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노동 현장은 목가적이지만, 사탕수수의 달콤함 속에는 비탄의 눈물이 숨어 있다. 채찍과 땀과 피투성이의 맨발은 주인에 의해 피에 물든 흑인 노예의 처절한 모습니다.『체의 녹색 노트』중에서. 김윤배/시인
첫 번째 사랑의 시 파블로 네루다 여인의 몸, 하얀 구릉, 하얀 허벅지. 너를 내어주는 모습은 꼭 이 세상을 닮았구나. 우악스런 농사꾼인 내 몸뚱이는 너를 파헤쳐 대지의 밀밭에서 아들놈이 튀어나오게 한다 터널처럼 난 홀로였다. 새들은 도망첬으며 밤은 엄청난 계략으로 나를 침범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난 너로부터 떠났다 무기처럼. 내 활시위에 메워진 화살처럼, 내 투석기의 돌멩이처럼. 하지만 복수의 시간은 다가왔다, 넌 나를 사랑하고 있다. 가죽의, 이끼의, 갈증나는 단단한 젖의 몸. 아, 젖가슴 사발! 넋이 나간 눈동자! 음부의 장미들! 네 슬프고 느릿한 음성! 내 연인의 몸이여, 난 네가 상냥하길 고집하리라. 나의 목마름, 끝없는 번민, 막막한 행로여! 영원한 목마름, 어두운 수로들, 끊임없는 피로, 가없는 고통이여. 스페인의 시인 로르카는 네루다를‘철학보다 죽음에 더 가깝고, 지성보다 고통에 더 가까우며,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평했다. 네루다는 칠레 공산당 입당 이후 박수갈채와 가시밭길의 삶을 걸었던 시인이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의 첫 번째 사랑의 시는, 열 여섯 살에 만난 테레사와 열 일곱 살에 만나 친구
봄의 정치 고영민 봄이 오는 걸 보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졌다 얼음이 풀린다 나는 몸을 움츠리지 않고 떨지도 않고 걷는다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만으로도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을 지나가도 상처가 되지 않는 바람 따뜻한 눈송이들 지난겨울의 노인들은 살아남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단단이 감고 있던 꽃눈을 조금씩 떠보는 나무들의 눈시울 찬 시냇물에 거듭 입을 맞추는 고라니 나의 딸들은 새 학기를 맞았다 고영민 시인의 봄은 정치로서의 봄이다. 정치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행위라고 말 할 수 있다면, 봄은 그것들을 대신해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움츠리지도 않고 떨지도 않고 걸을 수 있는 봄은, 억압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밝고 건강한 국가에서나 가능한 봄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몸을 지나가도 상처가 되지 않는 바람’이 있고 ‘따뜻한 눈송이들’이 축복처럼 내리는 것이다. 혹독한 시대를 건너온 노인들은 살아남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고, 나무들은 단단히 감고
햇 빛 유이우 모두 다 손을 잡고 뛰어내렸다 얼굴 가득히 고개가 아픈 옥상 호시절이 저 멀리 기차처럼 지나가고 청바지 같은 하늘 속으로 기적이 걸어나가지 않아도 산책이 많은 몸이었습니다 도착할 거라 믿었던 발도 없이 우리들은 늘 세상 속이었고 커지며 사라지며 세상을 고요하게 살아내기 시작했다 유이우 시인의 첫 시집『내가 정말이라면』은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그녀의 시는 다르다.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 다른 것이 이 시인의 매력이다. 그녀의 시에는 시론의 어느 덕목도 숨어 있지 않다. 시론의 낡은 틀에 얽매이기를 거부한 시, 기존의 시집과는 다른 곳에 놓여지기를 꿈꾸는 시가 그녀의 시세계다. 제목을 향해서 시문이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녀의 시는 서로 엇나가는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이미지와 이미지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메시지가 형성되게 마련인데 그녀의 시에는 그러한 운동성이 없다. 어디에서 감동을 건져 올려 신문지면을 채울지가 문제다.「햇빛」은 그나마 작은 감동이라도 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어린 날의 기억은 옥상에 머문다. 내려다보면 뛰어내리고 싶은 옥상에서는 저 멀리 호시절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그 시절, 하늘은 청바지처럼 진한 코발트빛이었을
봄 눈 전동균 걷다보니 구포시장 국밥집이었다 백년은 된 듯 허름했다 죽은 줄 알았던 김종삼(金宗三)씨가 국밥 그릇을 나르고 있었다 얼굴이 말갰다 눈빛도 환했다 여전히 낡은 벙거지를 쓰고 있었다 설렁탕이며 해장국이며 깍두기를 딱딱 제자리에 갖다주었다 뜨건 국물을 가득 부어주었다 공손하였다 두 병째 소주를 시키자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왼쪽 벽을 가리켰다 ‘소주는 각 1병’ 삐뚤삐뚤 아이 글씨였다 전동균 시인의 이번 시집은 존재와 부재, 순간과 영원, 소통과 불통, 삶과 죽음 등, 대립적 시각으로 일상의 실존적인 사실들을 독자 앞에 제시한다. 「봄눈」은 삶과 죽음을 상상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을 넘나들며 노래한 시다. 죽은자인 김종삼을 호명하는 것으로 상상의 공간은 긴장감이 감돈다. 허름한 국밥집에서 홀 서빙을 하고 있는 김종삼은 살아 있을 때와 다르지 않다. 말간 얼굴과 환한 눈빛, 그리고 벙거지를 쓰고 있는 모습의 김종삼은 전동균 시인에게 각인되어 있는 생전의 모습이다. 딱딱 각을 맞춰 늘어놓은 반찬이며 뚝배기 가득 부어주는 국물이며 공손한 태도며 살아 있을 때의 김종삼이다. 그러나 김종삼은 두 병째 소주를 시키자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래 살아 좋은 시를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이은규 이토록 눈부신 날 나의 세탁소에 놀러 오세요 무엇이든 표백 가능합니다 너무 투명하여, 그림자조차 없는 문장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라는 당신의 문장에 기대어 한 절기 환절기를 잘 견디었습니다 (........) 오늘부터 겨울 어떤 문장에 기대어 동절기 한 절기를 견뎌야 할지 막막하기만 먹먹하기만 합니다 문장 때문입니다, 네 아무렴요 아무렴요 아무래도 고된 날에는 일하기가 싫어요, 라는 팻말을 걸고 문을 닫아요 먼 구원과 가까운 망각 사이, 당신 모든 기억이 표백되는 겨울은 두 번째 생입니다 (..........) 무엇이든 표백 가능합니다 그림자조차 없는 문장, 너무 투명하여 이은규 시인은 첫 시집 『다정한 호칭』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했다. 이번 시집은 그후 8년만이니 그녀의 시집을 기다리던 독자들을 꽤나 애태웠다. 그녀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무엇이든 하얗게 표백해주는 공간이다. 여기서 표백은 무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무엇이나 무화 시키는 아름다운 세탁소는 정말 아름다운가를 생각하게 한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라는 문장에 기대어 환절기를 잘 견딘 그녀는 오는 겨울을 어떤 문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