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조비산. 용인 8경의 하나인 이 산을 마주하고 있는 마을이 백암면 용천리 율리마을이다. 65여 년 혼이 깃든 고유농악 12채를 구사하는 차용성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필자가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날 그는 경로당에서 여느 어르신들과 마찬가지로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활짝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인심 좋은 시골 할아버지였다. 그런 차단장은 독특한 판제와 양식을 갖추었으면서도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백암농악의 독보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자리를 옮겨 자택에서 앨범 등을 보며 인터뷰를 시작하자 비로소 그의 진면목을 하나하나 볼 수 있었다. # 농악과의 인연 1928년에 태어나 무진년생인 차단장은 백암면 용천리 율리마을에서 4대독자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 차단장의 아버지가 안성군 보개면에 살다 이사해 왔는데 어느새 손자까지 두었으니 4대째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일제 때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우리는 배움의 기회라곤 ‘강습소‘밖에 없었어. 11살에 석천리 덕은에 있는 강습소에 들어갔지. 국문과 습자(붓글씨)와 함께 일본어를 배웠는데 조선인 선생이 가르쳤는데 옥산리, 석천
공학자들의 침묵 곧 깨질 것…원점에서 신중하게 재검토해야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물류시스템이 필요하게 되자 고대에는 사람이 물건을 직접 나르거나 우마차를 이용하기도 했다. 화물의 부피가 커지자 자연스럽게 물길을 이용하게 되었고, 중세 들어 노예 등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물길을 파게 되었다. 이것이 운하이다. 운하는 중세에 물류의 85%?분담하게 되었고, 마침내 18세기 유럽의 산업혁명을 촉발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과정에서 발명된 증기기관차가 철도를 따라 물류를 효율적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철도가 산업혁명을 완성하게 된다. 교통의 역사를 놓고 볼 때 18세기까지를 운하의 시대, 19세기를 철도의 시대라고 한다면 20세기는 도로의 시대라 부른다. 즉 물류수송 수단으로 운하의 역할은 철도와 도로의 등장으로 상당히 축소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운하가 건설되고 있는 이유는 독일같이 운하가 잘 발달되었던 국가에서 물류체계가 운하에 일정부분 적응해 있기 때문인바, 기존 운하망에 연결되는 운하를 건설하는 것은 새로 운하를 건설하는 경우보다 경제성이 생길 여지가 있다. 20세기 들어 건설된 가장 유명한 운하 중 하나
“우리 목씨는 단성단본(單姓單本)인 진솔한 혈족입니다. 화목할 목(睦)자를 성으로 삼게 된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선대에 형제 화목하는 정이 남달라 화목할 목(睦)자를 써서 목씨로 자연 득성(得姓)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첨정공 종중의 5대 회장직을 맡고 있는 진억(78세)씨는 사천목씨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화목’을 더욱 강조한다. 직업군인으로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목회장은 군대에서도 ‘인화단결’이야말로 백전백승의 근원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가정에서의 화목은 말할 것도 없다. 종중의 일을 이끌어 가면서도 아무리 득이 되는 사업이라도 종중인들의 화목을 해치는 일은 아예 추진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삼배울에 건축하는 재실도 목씨 종중인들의 숭조정신 함양 외에도 화목을 위한 공간으로 꾸미고 있다고 한다. “4대 회장이신 진하씨가 수지회관을 마련하고, 덕성리 삼배울에 재실을 건립하고자 터전을 일궈 놓았습니다. 내년 11월에는 아마 그 재실에서 시향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그 일이 잘 돼서 모든 종인들의 숭모정신과 화목을 돈독하게 하는 성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천목씨 후손들도 여러 가지 덕목 가운데 ‘화목’
세상과의 첫 만남이 ‘뒷간’이었던 사람이 인생의 마감까지 ‘뒷간’에서 하겠다며 사상 초유의 화장실 문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Mr. 화장실’. ‘Mr. 화장실’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고유브랜드로 세계화장실협회 심재덕 회장의 애칭이다. 눈 내리는 1월 그를 만나기 위해 수원시 이목동의 해우재(解憂齋)를 찾았다. 뒷간에서 태어나면 오래 산다는 속설을 믿고 정말로 그를 뒷간에서 낳은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업보였을까. 심 회장은 화장실과의 인연조차 남달랐다. 얼마 전엔 정당을 탈당하고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현직 국회의원이다. 정계를 떠나 화장실 문화운동에 전력투구 하겠다는 각오다. 몇 년 전 그의 어머니 장례식 때 가봤던 그의 자택을 찾아갔지만, 그 시절의 흔적은 없어졌고 “아! 저 집이로구나” 하는 새로운 모형이 눈에 띄었다. 집 입구에는 ‘해우재(解憂齋)’라는 표석이 있었다. 그리고 대문 앞에는 ‘Mr. Toilet’s House’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해우재는 사찰에서 화장실을 일컫는 ‘해우소’와 같은 말이다. 해우소는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본디 우리 조상들은 열악한 환경의 뒷간
사천 목씨의 유래는 구체적인 문헌자료가 없어 알 길이 없다. 예부터 ‘형제상목설(兄弟相睦說)이 세간에 전해져 왔고, 이를 근간으로 사천목씨의 연원을 잡고 있을 뿐이다. 옛날 경상도 사천(泗川)지방에 형제가 살았는데 우애가 어찌나 깊었던지 그 소문이 널리 퍼져 마침내는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조정에서는 이 소문을 확인한 뒤 지극한 형제애(兄弟愛)를 표창하기 위하여 ‘화목 ‘을 뜻하는 ‘睦’자를 성씨로 내렸다는 것이다. 이 설화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문헌으로 한국고전소설 작품에 작가·연대 미상의 한글 필사본 ‘목시룡전’ (睦始龍傳,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필사본, 115면)이 있다. ‘목시룡전’ 은 ‘흥부전’ ‘적성의전’ 과 함께 우리나라에는 셋 밖에 없는 형제간의 윤리문제를 다룬 소설로서, 다른 두 소설은 형제간의 무정함과 시기질투를 줄거리로 하고 있으나, ‘목시룡전’ 만은 형제의 지극한 정의(情誼)와 사랑을 통하여 ‘형제상목’(兄弟相睦)이 개인적·가정적 차원을 뛰어넘어 사회적 화평의 기초를 이루는 핵심적 인륜(人倫)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문학사상 매우 독특한 위치와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기동, ‘한국
어느 날부터 그들은 바람을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바람은 형상을 거부하므로 우상이 아니다 떠도는 피의 이름, 유목 그 이름에는 바람을 찢고 날아야 하는 새의 고단한 깃털 하나가 흩날리고 있을 것 같다 유목민이 되지 못한 그는 작은 침대를 초원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건기의 초원에 바람만이 자라고 있는 것처럼 그의 생은 건기를 맞아 바람 맞는 일이 혹은 바람을 동경하는 일이, 일이 될 참이었다 피가 흐른다는 것은 불구의 기억들이 몸 안의 길을 따라 떠돈다는 것 이미 유목의 피는 멈출 수 없다는 끝을 가진다 오늘밤도 베개를 베지 않고 잠이 든 그 유목민들은 멀리서의 말발굽 소리를 듣기 위해 잠을 잘 때도 땅에 귀를 댄 채로 잠이 든다지 생각난 듯 바람의 목소리만 길게 울린다지 말발굽 소리는 길 위에 잠시 머무는 집마저 허물고 말겠다는 불편한 소식을 싣고 온다지 그러나 침대위의 영혼에게 종종 닿는 소식이란 불편이 끝내 불구의 기억이 되었다는 몹쓸 예감의 확인일 때가 많았다 밤,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은 바람의 낮은 목소리만이 읊을 수 있다 동경하는 것을 닮아갈 때 피는 그 쪽으로 흐르고 그 쪽으로 떠돈다 地名을 잊는다, 한 점 바람
용담은 용의 쓸개를 말합니다. 곰의 쓸개를 웅담이라 하여 귀중히 여기는데 용담은 그 이름만으로도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야생의 풀에 용의 쓸개라는 명칭을 붙여 준 것에 대해 그냥 건성으로 지나 칠 일이 아니라 한 번 쯤 이 시대의 사람들이 눈 여겨 봐야 합니다. 야생화가 다 그렇지만 특히 이 귀한 용담을 소개하는 것 자체만으로 필자는 설레고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용담은 용담목 용담과의 여러해살이 풀인데 한 자에서 두 자까지는 못 미치게 자랍니다. 꽃은 9월부터 11월말일까지는 피고 집니다. 햇빛을 너무나 좋아 해 햇빛이 있으면 마냥 싱글벙글하지요. 우리나라와 중국근처 시베리아 쪽 즉 극동지역인 우리주변에만 분포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칼잎용담, 산용담, 비로용담, 진퍼리용담, 흰그늘용담, 큰용담, 덩굴용담, 그리고 용담과 비슷한 구슬봉이라는 꽃도 있습니다. 꽃 색도 파란색, 남보라색, 연분홍색, 흰색으로 개성 껏 피지요. 우리가 부르기로는 용담초, 과남풀, 고담, 초룡단, 조선약화용담, 초동담, 백근초, 관음풀 등으로 불러왔습니다. # 용담에 얽힌 옛날이야기 옛날 착한 농부가 편찮으신 어머니를 지
■ 포천 소홀읍 고모리 문화거리 의정부~포천방면 43번국도. 축석 검문소에서 국립수목원 ‘광릉’ 방향으로 우회전 하면 314번 지방도이다. 10분정도 진행하면 좌측으로 고모리 문화거리 라는 작은 이정표가 반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전설이 깃든 고모산과 죽엽산을 끼고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6만여 평의 고모리 저수지를 중심으로 문화거리 입구부터 5킬로, 약 40여개의 고모리 문화카페촌은 인근 수목원을 찾는 이들로부터 알려지기 시작해 지금은 고모리 고정마니아들이 생길만큼 명소로 자리매김 했다. 고모리라는 지명을 지닌 작은 시골 촌마을이 문화의 향기로 넘쳐나는 문화거리로 변신할 수 있었던 모태는 꿈과 열정을 안고 고모리 691번지에 처음으로 문을 연 고모리 카페의 원조랄 수 있는 카페 691과 푸른하늘 모퉁이 때문이다. 이후 다양한 예술인들과 뜻을 같이하는 문화관련 인사들이 입주해 오늘의 문화카페거리가 된 것이다. 문화거리 초입의 닥종이 갤러리를 비롯해, 저 마다의 특색과 예쁜 이름을 지니고 웅장하면서도 동화 속 집 같은 외관의 크고 작은 카페들이 전원 속에 참 잘 어울린다. 물소리 바람소리, 비와 외로움, 그림이 있는 공간이라
유아기·유년기 아동들에게 창의력 길러준다 대형마트장난감 코너 한구석에 다양한 색깔의 고무 찰흙(?)을 보며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찰흙으로 비슷하지도 않은 동물들을 만들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름대로 열심히 만들었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며 내가 무엇을 만들려고 했었나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어쩌면 똑같이 만든다는 생각보다 손으로 느껴지는 찰흙의 감촉과 무엇인가 만들어낸다는 생각에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예전에 미술시간에 조물딱거리던 찰흙만큼 정겨운 느낌은 아니지만 요즘도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볼 수 있는 취미생활이 있다. 바로 ‘칼라클레이’가 바로 그것. △ 신세대 찰흙놀이 ‘칼라클레이’ 칼라클레이는 찰흙놀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점토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인조점토로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놀이이자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의 찰흙은 한가지의 색상만으로 표현을 해야 했지만 칼라클레이는 말 그대로 다양한 색상으로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기본색상이 정해져 있지만 혼합해 또 다른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색상을 표현할 수 있다. 가볍고 말랑말랑해서 손쉽
장흥아트파크 403호.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청년 작가 정규리를 만나러 장흥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20여평 규모의 텅빈 직사각형 작업장 안에서 그는 허무와도 같은 흰색의 바탕색을 칠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장흥아트파크는 가나아트 소유의 공간으로, 유망한 젊은 작가로 선정된 작가들만이 입주해서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옥션에서 활발하게 거래 되는 작가라는 사전 지식으로 인터뷰 요청을 하면서도 부담이 컸다. ‘인터뷰 짬 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시간을 빼앗는다는 미안함을 뒤로하고 인터뷰를 서둘러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작업 시간을 뺏기는 것에 아랑곳 않고 정성껏 답변해 줘서 고마울 뿐이다. “사실 작품을 그릴 시간이 부족해요.” 그는 서울 강남의 자택에서 매일 이곳 장흥으로 출근해서 그림을 그린다. 작품이 없어서 못 판다니 그가 존경스럽다. #삶의 관조 38세의 정규리는 전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고 앳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는 철학적 깊이가 무한해 외모와 연관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묵직하다. 그러면서도 화면에 보여지는 그의 작품은 작은 점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오히려 가볍게 느껴지기까지 하니 작가와
상다리가 부러진다? 전통 한정식을 고집하는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에 자리한 한양관(사장 한양수 57)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 가격부담 ‘NO’···밥이 보약이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제철에 나는 식재료로 정성을 담아 차린 밥상이면 열 보약이 필요없다는 뜻이다. 한양관에서는 ‘전통’을 고집한다. 깔끔한 외관도 외관이지만 이집 맛의 특색은 갖가지 밑반찬을 더불어 맛볼 수 있는 음식의 종류만도 30가지가 넘는다. ‘밥이 보약이란 말이 꽤나 잘 어울리는 집이다. 무엇하나 빠트림 없이 잘 차려진 밥상. 정성들여 만든 음식으로 혀를 즐겁게 하고 자연을 그대로 옮긴 듯한 친자연적인 인테리어로 눈을 즐겁게 하며, 귀에 거스르지 않을 정도로 잔잔히 흐르는 음악이 또한 귀를 즐겁게 하니 이것이 바로 보약이 아니고 무엇일까. 김이 솔솔 나는 밥을 입에 한가득 넣고 이번엔 무슨 반찬을 먹을까 이리저리 젓가락 방아를 찧는 호사를 모처럼 누릴만한 곳이다. 한양관에서는 제철 생선과 야채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 회사원들은 평일 끼니의 대부분을 밖에서 해결한다. 설렁탕 김치찌개 등과 같은 일품요리도 좋지만 때로는 집에서 차린 것처럼 여러 가지 반
IMF를 지나면서 부동산은 전 국민의 재테크 수단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8~90년대만 해도 부동산에 투자한다고 하면 그것은 복부인과 같은 특정계층의 투자(정확히 투기라 불렸다)방법으로 인식되었으나, 2000년대의 파고를 넘으면서 부동산은 전 국민의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된 것이다. 국민은행의 주택매매가격지수를 참고하면 2002년에는 전년대비 평균 16.4%의 06년도에는 전년대비 11.6%의 증감을 보이는 등의 안정적인 가격상승으로 자산의 증식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버블이라고 불리는 강남, 송파, 양천, 분당, 과천, 용인 등은 그 가격이 두 배 이상을 상승하는 등의 폭등양상을 보이며 한국의 부동산 시장 시세를 선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가격상승은 07년도에 들어 한 풀 꺽이게 된다. 2003년부터 지속적으로 선보였던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07년이 되어서 결과물로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조짐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당선자의 새로운 부동산 정책이 08년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게 될지 아직까지 그 결과를 점치긴 어렵지만, 평균적인 시각으론 그리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