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지난 2일 오후 5시 용인시 처인구 호동 334-2번지 일원 ‘길업습지’. 일요일 늦은 시간임에도 캠핑카를 비롯한 차크닉(‘자동차(車)’와 소풍을 뜻하는 ‘피크닉(Picnic)’의 합성어)차량 50여 대가 주차장을 메우고 있었다. 차박을 위한 캠핑카와 차크닉 차량들의 진입은 계속됐다. 습지 주변 곳곳과 주차장 내 차량과 캠핑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며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인공습지 조성 후 처인구 주민들과 자전거 라이더들에게 생태공원 휴식처로도 자리매김한 길업습지가 최근 급격히 늘어난 캠핑족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실태를 고발한다. <편집자 주>
고기 굽고 야간엔 캠프파이어
습지가 야영장으로 둔갑 눈살
취사·차박 등 금지 계도하면
오히려 욕설… 무법지대 전락
# 야영·취사행위 금지 표지판 무색
“길업습지가 야영장과 캠핑장 수준으로 둔갑했어요. 최근엔 주말이면 더 많은 캠핑족이 몰려와 습지가 몸살을 앓고 있어요. 한글을 모르는지 계도용(캠핑금지) 플래카드 밑에서도 버젓이 불을 지펴 고기를 굽고, 심지어 야간엔 캠프파이어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주말에만 길업습지 관리계도 업무를 맡고 있는 위탁업체 김 아무개(여·역북동)는 “캠핑 금지 계도를 하거나 불법주차 금지 안내를 하다가 젊은 사람들로부터 욕설까지 들은 적이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길업습지가 캠퍼들에게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유튜버들이 이곳을 무료 차박과 차크닉 명소로 소개하면서다. 현재 무료 차박 또는 무료 캠핑장 등을 검색하면 수십 개의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 등에 길업습지가 소개되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보다 300~500%이상 증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취재했던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 시간까지 주차장은 만차 수준이었다.
길업습지는 수도권 캠퍼들에게 접근성이 뛰어나고, 무료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인기다. 게다가 관리인도 주말에만 6시간 정도 근무하다 보니, 몰래 그늘막을 펼치거나 불을 지피는 등의 불법행위를 서슴치 않는 비양심 캠퍼들이 많다. 심지어 습지와 화장실에 쓰레기를 투기하는 사람들까지 많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오래전부터 아베크족들의 성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평일과 주말에 산책을 위해 습지를 찾던 인근 마을 주민들은 “생태환경 습지가 불법 캠핑족과 아베크족들의 성지로 변하고 있음에도 행정당국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며 “비양심적인 캠퍼들의 행태에 환멸을 느낄 정도”라고 성토했다.
# 야생동물 안식처 차지한 사람들
길업습지는 당초 환경부와 한강유역관리청이 조성한 인공습지로 경안천 상류지역에 설치된 비점오염저감시설이다. 환경부 한강유역관리청과 경기도는 2013년 21억 8000만 원을 들여 3만 7558㎡(약 1만 1300평) 습지를 조성했다. 이곳에서는 포곡하수처리장의 물을 역류시킨 후 다시 정화 처리해 방류하고 있다. 이후 관리 주체가 용인시로 이관됐고, 용인시는 현재 인공습지 12곳을 전문환경업체에 위탁관리 운영 중이다. 길업습지를 포함한 경안천 수계 습지 유지관리 예산은 총 3억 800만원(국비50%,도비15%,시비35%)이다.
최근 몇 년전부터 길업습지 인근 운학천에서는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을 비롯해 각종 야생동물들이 목격되는 등 뛰어난 환경복원 능력을 선보여왔다. 길업습지에서 1km 쯤 떨어진 곳엔 팔당상수원 발원지가 있고, 길업습지를 연결하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은 경안천(운학천과 김량천)이 이어지는 경기 광주까지 연결된다. 하지만 캠퍼들이 모여들면서 인공습지 내의 환경복원능력이 파괴되고 있어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시가 민원 해결을 위한 조치는 CCTV설치와 계도용 표지판과 플래카드 몇개가 전부다. 그나마 캠핑금지 계도용 전광판은 높은 조도로 인해 야간 경관은 물론 습지를 찾는 야생동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운학동 주민 이 아무개(54·여)씨는 “예전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도 자주 왔지만, 이젠 캠퍼들의 온갖 불법 행태를 목격하면서 정이 떨어져 오고 싶지 않다”며 “주차장을 유료화 하던지, 아니면 캠핑카들의 진입부터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야간만이라도 무료 주차장을 폐쇄해 차박과 차크닉(아베크족 포함) 차량들의 진입을 통제해야 습지 환경을 보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공습지는 일반 캠핑장과는 달리 생태환경복원을 위한 시설로, 이곳에서 야영이나 캠핑을 하게 되면 습지를 찾은 야생동물들의 개체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취재 결과, 이곳 습지를 찾던 야생 오리 개체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럼에도 용인시는 강제 단속 권한 등이 어렵다는 이유로 위탁관리업체에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습지유지관리 위탁업체인 녹스코리아 김아무개 관리소장은 “용인시로부터 위탁받아 예산에 맞춰 주말에만 6시간씩 습지 이용 계도 관리만 하는 실정”이라며 “습지 제초, 안전관리 등이 주요 업무라 야영과 캠핑, 주차 등에 대해서는 건의 정도만 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 반딧불이 서식처 복원 가로막은 자동차
그런데 용인시는 길업습지를 반딧불이 서시처 복원사업 대상지로 지정했다. 지난 5월 31일, 시는 반딧불이 서식처 본원을 위해 식생환경 조사용역을 발주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시는 경기도가 주관하는 ‘2024년 경기생태마당조성’사업에 길업습지가 선정되어 2026년 12월까지 도비 6억 6500만 원을 포함해 총 9억 5000만 원을 투입하게 된다.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습지의 중요성 및 생물의 다양성을 알리는 교육장소로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청정지역에서만 서식하는 반딧불이는 캠핑장 혹은 무분별한 차크닉 장소에서는 사실상 서식처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따라서 시와 시의회는 습지보전을 비롯한 캠핑 차량 단속과 주차 관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강제 권한이 있는 조례 제정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오는 8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관광진흥법에는 관광지나 유원지 내 불법 캠핑 등에 대해서는 단속이 가능하지만, 습지의 경우 관광지가 아니기에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종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