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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스폰서

윤승용 <본지 객원 논설위원>

검찰총장에 내정됐다가 14일 전격 사퇴한 천성관 전 서울검사장 사건을 계기로 새삼 ‘검사와 스폰서’와의 관계가 화제다.

영어사전에 따르면 스폰서(sponsor)는 “행사, 자선 사업 따위에 기부금을 내어 돕는 사람”, 또는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 따위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광고주”등으로 풀이되어 있다. 천씨는 10여년 전 우연히 알게 된 건축업자 박모씨로부터 15억5000만원을 빌린데다 두차례나 해외로 골프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또한 공항면세점에서 천씨의 부인과 박씨의 부인이 똑같은 고가 명품 핸드백을 산 것으로 드러났다.

천씨는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차용증서를 쓰고 빌린 사적인 채무이지 금전적 이득을 취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했다. 해외 골프여행도 휴가기간에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탔는지는 모르지만 당시에는 함께 비행기에 동승했는지도 몰랐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그의 해외골프여행은 그 후 청와대 조사결과 박씨 부부와의 동행이었음이 드러나 총장직책으로부터 낙마당하는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천씨 본인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청문회에서 드러난 사실만 본다면 박씨는 천씨의 오랜 스폰서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가끔씩 만나는 사람(천씨와 박씨는 학연, 지연으로 볼 때 아무런 인연이 없다고 한다)에게 그 같은 거액을 은행보다 훨씬 낮은 이자율에 현찰로 빌려주는 경우는 아마도 ‘자선사업가’이거나 박연차 같은 정신나간 기업인 정도일 것이다.

검사를 비롯한 고위공직자와 언론인들에게 스폰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특히 2005년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이 관리, 후원하는 공직자와 언론인이 있다”고 폭로함으로써 ‘악어와 악어새’로서의 음습한 공생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당시 김 변호사는 검찰 쪽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임채진 전 검찰총장 등 소위 ‘떡값 검사 리스트’를 발표했다. 후에 검찰이 떡값 검사들에 대해 대충 수사를 한 뒤 무혐의 처분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은 슬그머니 흐지부지 됐지만 검찰은 국민들로부터 ‘떡찰’이란 오명에 시달려야했다.

필자가 사회부 기자로 일선에서 취재할 때에도 검찰이나 경제부처 관료 등에는 스폰서가 존재하는 게 다반사였다. 스폰서라는 공식 명칭보다는 ‘스폰지’ 또는 줄여서 ‘폰’으로 불리던 스폰서를 누가 많이 거느리느냐가 출세의 필요조건으로 여겨졌다.

특히 통 큰 스폰서를 둔 사람은 동료들로부터 사갈시는 커녕 부러움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검사들의 경우 여러 임지를 옮겨다니면서 자연스레 그 지역 유지와 기업인들을 사귀게 되는 데 이들과의 인연이 차츰 길어지면서 스폰서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외에 간혹 특정 실업인이 신원파악을 통해 소위 ‘잘나갈 것 같은’ 신참 검사를 찍어 의도적으로 접근한 뒤 장기적으로 투자, 관리해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스폰서들은 명절 때마다 떡값이라는 명목아래 ‘촌지(사실은 촌지가 아니라 상당한 액수의 뇌물이나 다름없다)’를 건네고 수시로 술 접대, 골프 접대 등을 베풀며 친교를 다진다.

때문에 물 좋은 스폰서를 둔 공직자들은 동료나 후배들에게 호기롭게 고급 술자리도 자주 만들고 애경사때 부조금도 두툼하게 건네곤한다. 이 덕에 이 같은 인사들은 조직내부에서 “호쾌하고 리더십이 뛰어난 보스형 인간”이란 평을 받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스폰서가 약하거나 아예 없는 인사는 “쫀쫀하고 짠 사람”으로 낙인 찍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지연, 학연으로 맺어진 후배중에 괜찮은 후배에게 자신의 스폰서를 물려주고 공직을 떠나는 경우마저도 있었다.

물론 현재의 공직자들은 지금은 이와 같은 얘기들은 다 옛날 이야기가 됐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검찰 총장 후보군 가운데 가장 청렴하다고 해서 골랐다는 천성관씨마저 이 지경이라면 우린 도대체 누굴 믿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