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포기에 만원을 훌쩍 넘는 바람에 ‘금(金)배추’로 불리던 배추값이 다행히 3000~4000원대로 하락했다. 가을 장마 등 이상기후와 지난해 배추값 폭락의 여파로 배추 재배량이 줄면서 전국을 강타한 배추파동이 몰아치는 지난 1달간은 생산자인 농민이나 중간유통자인 상인, 그리고 소비자인 시민 모두에게 불편한 시절이었다.
생산지인 농촌에서는 배추 1포기가 불과 1000원 내외에 출하되는데도 마치 농민들이 폭리를 누리는 것처럼 비치는데 대해 억울해했다. 농민들은 “소출마저 줄어 사실상 실질 소득은 줄었는데 배추파동의 원인제공자인 것처럼 비쳐 황당하다”고 하소연했다. 배추값이 폭등하자 일부 식당에서는 아예 배추가 모습을 감추었는가하면 김치찌개나 묵은지찜을 파는 식당에서는 일시적으로 김치가 주재료인 메뉴를 포기해야만 했다.
배추파동은 정치권도 강타했다. 야당은 “배추값 폭등은 4대강사업으로 경작지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민노당 강기갑의원은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농사를 못 짓게 하는 곳이 전체 1000만 평이 넘는다”며 “낙동강 유역에 채소를 많이 생산·재배하던 지역이 농사를 못 짓게 해 다 잡초에 묻혀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추파동의 압권은 이명박 대통령이 “배추가 비싸니 양배추를 먹자”는 이른바 양배추소동이었다. 청와대는 지난달 30일 이명박 대통령이 “배추가 비싸니 내 식탁에는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올리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최근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시중 마트를 다녀온 뒤 한포기에 1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놀란 뒤 나온 발언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이 내용이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인터넷게시판 등에는 현실 물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는 시민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실제로 배추값이 1포기에 1만원을 호가하던 그 즈음 양배추값도 배추값과 거의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이처럼 배추파동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우리집은 강건너 불구경하듯 큰 걱정없이 지나갔다. 과정은 이렇다. 배추값이 천정부지라는 소식에 걱정이 돼서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집도 이제 김치를 아껴먹어야겠네? 1통에 만원이 넘는다던데.”
아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우리는 생협공동체인 ‘한살림’을 이용하는데 요즘에는 가격이 시장보다 훨씬 싸던데.”
나는 아내가 내미는 생협안내서의 종목별 가격표를 보곤 깜짝 놀랐다. 배추 1포기가 불과 2500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무나 대파 등 다른 신선채소 값도 마찬가지였다. 한 살림의 경우 배추파동이 최고조에 달하던 이달 초순 무는 1개에 1020원, 대파는 1㎏에 2200원, 쪽파는 1㎏에 2700원 등 대부분 채소들이 시중 소매가의 3분의1 선을 유지했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한 살림 뿐 아니라 아이쿱(iCOOP), 두레생협 등 생활협동조합 형식의 네트워크는 동일했다.
생협의 가격이 싼 이유는 직거래식 유통구조 덕분이다. 복잡한 유통구조를 서너번 거치면서 가격이 폭등하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생협은 보통 일반 농산물보다 20~30% 비싼 유기농이나 무농약 혹은 저농약, 친환경 농산물만 다룬다. 때문에 평소에는 가격이 재래시장이나 마트에 비해 다소 비싼 편이지만 올해처럼 생산량이 줄어 파동이 일어나면 가격이 시중가보다 오히려 싸지게 된다. 생협들은 농산물의 파종기에 생산자와 계약재배 방식으로 미리 값을 정하는데 계약재배와 책임소비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빠르게 오르더라도 소비자(조합원)들이 안정된 가격에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생협은 또한 연 3만원 정도의 조합비를 내는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최종 소비자가격의 10% 정도가 기금으로 적립돼 흉작 때 생산자 회원에게 주는 보조금으로 쓰인다. 일종의 재해보험인 셈이다. 현재 한살림 등 국내 3대 생협 이용자는 전국에 약 40만명에 이른다. 이번 배추파동은 저장성이 좋지 않은 신선채소의 경우 유통경로의 획기적 개선과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신뢰있는 네트워크 확보가 해결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