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핀 술잔
함성호
마셔, 너 같은 년 처음 봐
이년아 치마 좀 내리고, 말끝마다
그렇지 않아요? 라는 말 좀 그만 해
내가 왜 화대 내고 네년 시중을 들어야 하는지
나도 한시름 덜려고 와서는 이게 무슨 봉변이야
미친년
나도 생이 슬퍼서 우는 놈이야
니가 작부지 내가 작부냐
술이나 쳐봐, 아까부터 자꾸 흐드러진 꽃잎만 술잔에 그득해
귀찮아 죽겠어, 입가에 묻은 꽃잎이나 털고 말해
아무 아픔도 없이 우리 그냥 위만 버렸으면
꽃 다 지면 툭툭 털고 일어나게
니는 니가 좀 따라 마셔
잔 비면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지 말고
술보다 독한 게 인생이라고?
뽕짝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술이나 쳐
또 봄이잖니
겨울도 오기 전에 봄 생각이 불쑥 드는 건, 지쳤다는 얘기다. 욕지거리가 이토록 정겹게 느껴지는 경우가 시가 아니면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싸우는 자들은 말없이 총과 폭탄으로 사람을 죽인다. 그것에 비해 잔 넘기며 건네는 욕설은 오히려 인간적이란 생각마저 든다. 비약이 좀 심하지 않은가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전쟁보다는 벚나무 아래 술자리 욕설이 훨씬 아름답다는데 한 표 던진다. 모두가 지쳤을 때 겨울은 온다. 사랑도 사람도 냉담을 견디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리라. 부디 ‘아무 아픔도 없이 우리 그냥 위만 버렸으면’…….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