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언론에 보도된 그의 이름을 보고 “설마, 동명이인이겠지”라고 생각했다. 요즘 ‘맷값 폭행’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다 구속된 최철원 M&M 전 대표 얘기다.
평소에 재벌가들의 혼맥 관계와 2~3세들의 활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필자는 이번 사건 이전부터 그를 조금은 알고 있었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철부지처럼 종종 사고를 치는 통상적인 재벌가 후예답지 않은 독특한 행보를 보여 준 터여서 설마 했던 것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 전 일이다. 2008년 6월 모 연예일간지에 ‘선대 그늘 벗어나 창업에 성공한 재벌가 2~3세들’을 다룬 기획기사에 그가 주인공으로 나온 것이다. 그는 이 기사에서 대성그룹 막내딸로 태어났으면서도 독립사업체를 세워 성공한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에 이어 두 번째 창업 성공 사례로 등장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그는 SK그룹 부회장을 지낸 최종관 전 SKC고문의 장남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는 사촌사이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복무를 마친 뒤 1996년 SK그룹 경영기획실 인턴사원으로 입사, 유통과 상사업무를 익히며 승승장구, 2002년 3월 33세의 나이에 SK글로벌 상무로 승진했다.
하지만 그는 그해 7월 사표를 내고 퇴직금 등을 밑천으로 마이트앤메인이란 물류 유통회사를 설립했다. 최씨는 이 회사를 2년 만에 매출 200억원대의 중견회사로 키운데 이어 2008년 4월에는 코스닥 상장기업인 디질런트FEF를 인수하면서 마이트앤메인을 우회상장시켜 대박을 터뜨렸다.
최씨는 또 올 3월에도 언론에 등장했다. 최씨는 육군사관학교 내 육군박물관에서 소장해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전세단을 10개월간 자비 1억여원을 들여 외관에서 엔진까지 구동 가능한 상태로 완전 정비해준 것이다. 최씨는 복원식 행사에서 “약 2년 전 우연히 육군박물관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는데 ‘고 박정희 대통령 승용차’라는 안내 팻말이 걸린 캐딜락 차량이 심하게 훼손돼 있고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다”며 차량 정비에 나선 동기를 설명했다.
애국심에 찬 이 같은 선행을 전한 기사에는 최씨가 지난 2월 모교인 고려대에 경영대학 신경영관 건립기금으로 10억원을 쾌척한 사실도 나와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최씨는 정말 괜찮은 사람처럼 보인다. 재벌가의 후예임에도 불구하고 홀로서기에 나서 튼실한 기업을 키워낸 데다 사회적 기부활동에도 열성을 보인 것이다. 더구나 그가 해병대 출신이란 점은 단연 돋보인다. 해병대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군대가 아니다.
대부분이 지원병인데다 경쟁률도 만만찮다. 본인의 투철한 애국적 소신이 없다면 가기 힘든 군대다. 군 복무를 회피하는 게 다반사인 재벌가의 풍토에 비춰보면 그는 이단아임에 틀림없다.
2007년 한 방송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재벌그룹 친인척 147명의 병역 면제 비율은 33%로 일반인들의 면제 비율 6%와 비교해 볼 때 5배가량 높은 수치다. 특히 범삼성가는 전체 병역 대상자 11명 중 8명이 면제를 받았다. 삼성가를 이어 SK그룹 역시 7명 중 4명이 면제를 받아 57%라는 높은 면제율을 보였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그의 외아들인 이재용 사장 모두 병역 면제자다.
하지만 이번 맷집폭행 전말이 밝혀지면서 그의 마초적이고도 비상식적인 또 다른 측면도 연일 드러나고 있다. 평소에도 ‘안되면 되게 하라’는 해병대정신을 강조한 그는 유난히 군대처럼 회사를 운영했다고 한다. 회사 미관도 국방색위주로 꾸미고 ‘정리정돈’과 ‘반공’을 강조했다고 한다. 회사를 군부대처럼 운영했던 것이다. 회사에서도 군부대의 ‘상명하복 문화’가 횡행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회사를 군대처럼 운영한 그에게 1인시위를 벌이며 자신에게 대드는 노동자는 군대로 치면 ‘개기는 졸병’으로 보였을 것이다.
과거엔 군대에서 상관에게 대드는 졸병은 ‘명령불복종죄’로 무조건 구타와 얼차려 대상이었다. 그는 탱크로리 기사를 상대로 군대식 체벌을 가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폭행을 가하지나 않았을까? 경영학을 전공한 그가 군대와 회사가 다른 조직이란 점을 깨우치지 못한 게 안타깝다.
더구나 이번 연평도 피격사태로 새삼 ‘귀신잡는 해병’, ‘해병대 정신’이 재조명되는 시점에서 그가 여타 해병대 출신들의 명예에도 커다란 흠집을 낸 것이어서 안타깝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그의 현재 심정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