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선 철도
이창기
그렇게 왔다 가나부다 왜가리 갈대 북서풍과 청둥오리의 2월
스스로 독(毒)을 품게 하던 겨울의, 가난과 갈증의 새벽으로 가는
밤마다 몸서리치며 떨던 바다를 한 광주리씩 머리에 이고
고개 숙인 낙타처럼 또박또박 걷게 하는 하나뿐인 길
떠나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빵과 홀로 남은 여자의 헝클어진 머리 같은
그들이 버리고 간 추억이 깨진 소주병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불륜의 끊임없는 바퀴와 익숙한 체중을 못 잊어하는 옥수수밭에서
숨죽여 지켜보는 아이들의 뜨듯한 가랭이 같은 아직도 귀대면
중무장한 병사의 씩씩한 발자국 소리 같은 것이 오래도록 남아서
태업한 꿈속까지 이어지는 나는 수척한 햇빛에 이리저리 반사되며
얻어터지며 철길 위에 팔 벌려 수평을 잡으며 위태롭게 걷는다
그렇게 왔다 가나부다 70년대(年代) 배호 김종삼 그리고 너는
군자, 소래. 발음만 해도 입 안에 소금기가 느껴지는 정겨운 지명들이다. 수원에서 인천을 오가던 수인선 협궤열차가 정차하던 역 이름들이다. 협궤열차, 궁륭은 낮고 열차 폭은 좁아서 흔들릴 때마다 서로의 무릎이 닿곤 하던 장난감 같은 기차. 어차피 산다는 게 살 부비는 일이거늘, 우리는 언제부턴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창기는 인천 사람, 지금은 용인 지척 이천 장호원에 살고 있다. 지난해 가을, 그와 함께 강화도에 소풍을 간 적이 있다. 전등사 스승의 무덤 앞에서 시를 읽으며 술잔을 주고받던 기억이 손톱 끝 봉숭아물처럼 여태껏 남아있다. 그의 손은 크고 자상했다. 뺨이라도 한 대 맞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왔다 가나부다’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는…….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