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지난해 말 온 국민의 아쉬움 섞인 환호 속에 행복하게 자리를 물러난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본명이다. 그는 현재 전 세계적인 칭송을 뒤로한 채 정치적 고향인 상파울루 주 상 베르나르도 도 캄포 시의 사저로 돌아가 모처럼의 느긋한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은 한편의 드라마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대하드라마라 할 만하다. 1945년 브라질 북동부 오지의 극빈촌에서 빈농의 8남매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워낙 가난해 초등학교를 중퇴한다. 불과 12살 때부터 세탁소 보조, 창고지기, 땅콩팔이, 구두닦이로 일하다 기계를 다루는 기술을 배워 금속노동자로 일한다. 철강공장에서 노동자의식에 눈을 뜬 그는 적극적으로 노동운동에 참여, 서른 살에 94%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전국 금속노조위원장에 당선된다. 1980년에는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노동당을 창당해 당수를 맡는다.
1986년에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여세를 몰아 노동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 세 번이나 낙선했으나 불굴의 의지로 또 다시 도전, 마침내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다. 그는 당시 한국이 그랬듯이 브라질을 강타한 IMF외환위기의 반사이익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막상 대통령직에 올랐으나 하원에서 노동당의 의석이 18%밖에 안 되는 등 정치 환경이 열악해 혁신적인 좌파 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특유의 친화력과 포용력을 발휘해 좌우를 아우르는 유연한 정책을 펼쳤다. 취임 초 좌파 대통령의 등장에 기겁을 외국자본이 철수하는 등 경제가 어려움에 봉착하는 바람에 증시가 폭락했으나 룰라는 완급을 조절해가며 개혁을 밀어붙였다.
그는 재임 중 경제성장, 경제안정, 분배개선 등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도저히 한꺼번에 이룰 수 없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거의 유일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는 좌우를 포용하는 실용주의를 견지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좌파적 입장을 고수했다. 2003년 1월 대통령으로서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룰라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는 것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라고 천명했는데 결국 그는 이 공약을 실천했다.
그는 공약 실천을 위해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예방주사를 맞는 것을 조건으로 아이 한 명당 매달 22레알(약 1만4000원)을 지원해주는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제도와 빈민들에게 식량을 무상공급하는 ‘포미 제로(Fome Zero)’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로 1100만가구가 혜택을 받았는데 그 결과 집권 8년 동안 빈곤율이 30%에서 19%로 감소하는 등 소득불평등이 크게 줄었다. 그는 또한 자신의 극빈했던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빈곤퇴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재임중 최저임금 2배 인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이를 거의 실현했다. 2002년 월 200레알이던 최저임금은 2010년에는 510레알로 올랐다.
하지만 그의 성공가도가 탄탄대로였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정치철학인 ‘소통과 통합’에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좌파진영에서 줄곧 불만을 제기했던 것이다.
그는 대선에서 섬유업계 재벌을 러닝메이트로 삼아 반발을 산데 이어 집권 후에는 미국 보스턴 은행 출신인 엔히케 메이렐레스를 중앙은행 총재로 앉혔다. 의회 내 소수당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좌파와 중도좌파, 중도우파 10여 개 정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했다. 극단적인 좌파 또는 우파 정당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정당과 정책연합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정책도 은행 국유화, 외채 동결, 토지 개혁, 거대 언론에 대한 통제 등 급진적이고 과격한 내용을 포기하고 중도실용노선을 과감하게 채택했다.
때문에 룰라를 지지했던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이라는 빈농단체는 “룰라는 분명 우리의 친구이지만 우리의 적의 친구이기도 하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일부 극단적 지지자들이 3선연임을 금지한 헌법을 고쳐서라도 다시 대선에 출마하라는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神)은 한 사람에게 선물을 두 번 주지는 않는다”며 홀연히 낙향한 그의 마지막도 역시 그답게 아름다웠다.
집권연장을 위해 개헌을 일삼고 집권 후엔 ‘화합과 소통의 정치’ 대신 정치보복을 일삼아온 부끄러운 우리 역사를 떠올려보면 브라질 국민이 마냥 부럽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