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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28|달팽이 집이 있는 골목|고영

달팽이 집이 있는 골목

고  영

 

내 귓속에는 막다른 골목이 있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 밀려난 작은 소리들이
따각따각 걸어와
어둡고 찬 바닥에 몸을 누이는 슬픈 골목이 있고,
얼어터진 배추를 녹이기 위해
제 한 몸 기꺼이 태우는
새벽 농수산물시장의 장작불 소리가 있고,
리어카 바퀴를 붙들고 늘어지는
첫눈의 신음 소리가 있고,
좌판대 널빤지 위에서
푸른 수의를 껴입은 고등어거 토해놓은
비릿한 파도 소리가 있고,
갈라진 손가락 끝에
잔멸치 떼를 키우는 어머니의
짜디짠 한숨소리가 있고,
내 귓속 막다른 골목에는
소리를 보호해 주는 작고 아름다운
달팽이집이 있고,
아주 가끔
따뜻한 기도 소리가 들어와 묵기도 하는
작지만 큰 세상이 있고,


 

 

시가 안 써지거든 시장엘 가보라고, 오규원 시인께서 늘 말씀하시곤 했다. 물리적 공간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다행스럽게도 나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영 시인은 부산 산복도로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유명한 참치잡이 회사의 동업자였고, 직접 대양에 나가 참치를 잡았다. 그리고 배가 침몰하는 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거짓말처럼 망했다. 드라마틱하다고? 아니, 대개 저마다의 사연이 다 기구하기 이를 데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어쩌겠는가? 하필 불행이 지나가는 그 시간, 그 자리에 우리들 생이 놓여 있었던 것을. 그러나 불행을 보듬는 손길은 따뜻하다. 슬픔을 어루만지는 시는 따뜻하다. 슬픔이 전염병처럼 번지는 시절, 죽어가는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가난한 사람들의 기침소리에 귀를 막지는 말자. 당신 발밑에서 비명을 지르는 저 눈길에게도 눈길 한 번 주시길!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