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최승자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
삼십 삼 세 미혼 고독녀의 봄
실업자의 봄
납세 의무자의 봄.
봄에는 산천초목이 되살아나고
쓰레기들도 싱싱하게 자라나고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이
내 입안에서 오물이 자꾸 커 간다.
믿을 수 없이, 기척처럼, 벌써
터널만큼 늘어난 내 목구멍 속으로
쉴 새 없이 덤프트럭이 들어와
플라스틱과 고철과 때와 땀과 똥을
쿵 하고 부려놓고 가고
내 주여 네 때가 가까왔나이다
이 말도 나는 발음하지 못하고
다만 오물로 가득 찬 내 아가리만
찢어질 듯 터져 내릴 듯
허공에 동동 떠 있다.
‘삼십 삼 세 미혼 고독녀’에게만 봄이 오나? 사십 오 세 기혼남에게도, 삼십 구 세 이혼녀에게도 봄은 온다. 동의도 구하지도 않고, 돈 받으러 찾아오는 세리(稅吏)들처럼. 죽음은 왜 동의도 받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개인의 삶을 제 멋대로 종결짓는가.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연장 동의안을 통과시킬 수는 없는 걸까. 강변마다 ‘쓰레기들 싱싱하게 자라나’는 이 봄. ‘내 목구멍 속으로/쉴 새 없이 덤프트럭이 들어와/플라스틱과 고철과 때와 땀과 똥을/쿵 하고 부려놓고 가’는 이 봄. 실업자와 월급쟁이와 성실 납세 의무자에게만 찾아오는, 힘겨운 생의 환절기, 이 봄.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