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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38|본동에 내리는 비|윤중호

본동일기 넷
본동에 내리는 비


윤중호


성님, 모든 게 젖습니다.
아침마다
국립묘지를 다녀오시는, 옆집
할아버지의 보건체조가 젖고,
또 하루를 공친, 지하철 공사장 아저씨들의
담배 연기가
선술집에서 젖고,
보증금을 20만 원씩이나 넣은
내 삭월세 방 앞에 심어논
호박잎이 젖고, 그 뒤로
아무렇게나 버려진 공터의
풀잎이 젖고,
옆방 아저씨의 청승맞은 유행가도
따라 젖고, 젖다가는
한강물도 제법 뽀얀 물보라를 튀기면서
젖어갑니다.
성님, TV에서는 한강 수위가 어쩌구
말이 많지만, 제일한강교 위로
대낮에도 불을 켜고 씽씽 달리는 차를 보며
산동네 사람들은, 애기를 들쳐 업고 꾸적꾸적
물귀경갑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무섭게 불어오르는 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야 없지만
깜깜하도록 퍼붓는 장마비도
지랄맞고 눅눅한 산동네의 답답한 마음들은
적시지 못하는 모양이지요?

 

 

 

방사능비가 내린다. 겨우 피기 시작한 목련꽃 벌어진 입 속으로,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등교하는 딸아이의 머리 위로 방사능비가 내린다. 암을 일으키느니 인체에 해가 있느니 없느니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이 사실을 자꾸 숨기려고 한다는 사실 때문에 자꾸 불편해진다. 인간은 하루에 2만~2만5000번 숨을 쉬면서 1만5000리터~2만리터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농약을 한꺼번에 다량 먹어서 해로운 게 아니잖은가. ‘애기를 들쳐 업고 꾸적꾸적 물귀경 가는 사람들’처럼 남의 이야기인 양 ‘설마’에 기대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방사능비일지언정 타성에 젖은 마음을 어쩌진 못하는 모양이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