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당이씨는 태교신기에서 “태를 정성껏 기르지 않으면 자식이 재주만 없겠는가. 형체도 온전하지 못하고 병도 매우 많으며, 태아가 떨어질 수도 있고, 출산도 어려우며, 비록 낳아도 수명이 짧다”고 경계하고 있다.
의학과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많은 아기들이 기형 혹은 유산 조산 등에 노출돼 있고 태어나서도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을 보면 사주당이씨가 살았던 조선시대는 더 말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사주당이씨는 총명하고 어진 인성을 갖춘 아기보다 건강한 아기 출산이 더 절실했는 지도 모른다. 임신부의 일하는 법, 먹는 법, 잠자는 법, 걷는 법 등 태교신기에는 임신부가 10달 동안 조심해야 할 내용을 조목조목 다뤄 불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태아만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출산 도중이나 혹은 출산 후의 후유증으로 인해 임신부의 사망도 많았다. 영양부족이나 임신중독증 기타 질병 혹은 이상 출산 등으로 아기 뿐만이 아니라 엄마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양반가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선 후기의 무관인 노상추(1746~1829)가 6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썼던 일기에는 이같은 일이 예사로 일어나고 있음이 기록돼 있다.
노상추 일기를 연구한 문숙자 박사는 “가문의 대를 잇고 가족의 구성원을 만드는 출산은 여성에게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출산과 동시에 혹은 출산한 지 불과 며칠, 몇 달만에 사망하는 여성이 줄을 이었다. 노상추의 집에서도 대대로 출산의 기쁨과 함께 산모를 잃는 슬픔이 교차했다.
노상추 아버지의 첫째 부인은 맏아들을 낳고 며칠을 앓다가 스물 다섯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아버지의 둘째 부인인 노상추의 어머니는 6번째 아기를 낳고서 일주일만에 사망했다.
노상추 역시 첫째 부인은 스물 두 살에 첫 아들을 낳고 사망했다. 둘째 부인은 세 번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다.
어머니가 낳은 어린 여동생과 자신의 아이 역시 1~2년밖에 살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노상추 동생의 부인도 출산 후 17일 만에 사망했고 조카의 첫째 아내도 득남한지 18일만에 세상을 떠났다”며 “양반가에서 이처럼 여성들이 출산으로 인해 사망을 반복했는데 그들보다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낮은 하층의 여성들은 더 빈번하게 출산과 사망을 반복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심청이의 어머니인 곽씨 부인도 심청이를 낳고 곧바로 출산 후유증으로 죽지 않는가.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은 이같은 일이 과거보다 엄청나게 줄었다.
그러나 오늘날도 아프리카 지역의 후진국들은 세계 출산율의 58%를 차지하는 가운데 임신부 사망률은 이보다 높은 91%를 차지하고 있다.
기아와 다산과 에이즈를 비롯한 질병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이지만, 의료시설과 종사자가 크게 부족한 데 따른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의사나 간호사, 조산사 등의 도움을 받는 비율이 6%에 불과하며 시에라리온에선 조산사 1명이 많게는 하루 10~15명의 아이를 받아내는 등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래학자들에 따르면 저출산 고령화로 2305년에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운명에 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앞으로 전철에 노약자석이 별도로 마련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석이 별도 마련되고 나머지는 다 노인들의 좌석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급기야 원정 출산시대를 맞고 있다. 출산율 저하로 분만실이 사라져 원정 가서 출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전남 완도군과 장흥군에서는 지난 1년 사이에 분만실이 사라져 아이를 낳기 위해 광주까지 130km를 달려간다.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연간 수백억원을 지원했지만 분만 업무를 하는 병·의원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전국 228개 시군구에서 분만실이 한곳도 없는 지자체가 여주군을 비롯해 49곳에 달한다.
전국 출산율 1위인 강진군은 산부인과 유치에 실패하고 대신 군내에 있는 병원에 분만실을 설치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분만 취약지역 거점 산부인과 시범사업을 운영하기로 했다. 의학과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오늘날 적절한 진료와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 생명이 위태로와 지는 일이 생길까 심히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