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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57|쓸쓸한 환유|이성목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7

            쓸쓸한 환유

                                          이성목

 

살아있는 뱀으로 술을 담글 때, 술병에 술을 가득 채우지 않으면 뱀이 술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견딘다고 한다. 그 허기진 뱀은 제 꼬리를 조금씩 잘라 먹으며 목숨을 부지한다고 한다. 훗날 그런 술병 속에는 눈을 치켜뜨고 죽은 뱀의 머리통만 주먹만 하게 불어서 둥둥 떠 있다고 한다.

양파가 붉은 망을 뚫고 푸른 촉을 내밀었다. 뿌리도 없이 양파의 몸을 뚫고나온 촉에 손을 대는 순간 둥근 양파의 몸이 푹 꺼졌다. 양파의 촉은 제 몸을 빨아먹으며 한 방울의 육즙도 남지 않을 때 대궁을 부풀리며 자진한다.

몸에 없는 것이 아플 때가 있다. 오른 쪽 다리를 잘라낸 친구는 다리를 잘라낸 뒤에도 발목이 시큰거리고 발가락이 꼼지락거린다고 한다. 잠결에 발바닥이 아파 뒹굴며 발에 손이 갔을 때, 발은 어디 있는지 잡히지 않고 뿌리 없는 통증은 며칠을 그렇게 몸을 다녀갔다고 한다. 다리를 자르지 않았다면 목숨을 구하지 못했으니, 그는 날마다 몸의 일부를 떼어주며 내생을 향하여 절룩절룩 걸어갈 것이다.

나는 꼬리뼈를 퇴화시키며 사십 년을 살아 왔다. 날개 죽지를 지우며 몸 안으로 숨은 지 사십 년이 지났다. 쇄골 사이로 내다보는 바깥, 없는 꼬리, 없는 날개를 흔들며, 긴 팔 덜렁거리며 춤추는 나를 본다. 아직도 다 사라지지 않았다니! 그림자 둘둘 말아 쥐었던 손바닥을 펼치면, 투명 날개를 단 나비 떼가 날아오른 자리에 손금이 둥근 물결처럼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뱀을 인간에 빗댄 이성목의 ‘환유’는 차라리 ‘직유’에 가깝다. 그러므로 자, 당신과 나는 제 꼬리를 잘라 먹으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술병 속의 뱀이란 말이다. 이십여 년 전, 생사탕(生蛇湯) 간판 앞을 지나던 친구 왈, ‘뱀을 먹은 사람은 죽을 때 숨이 한 번에 끊어지지 않는다는데…….’술병에 빠진 뱀이나, 그 뱀을 잡아 드신 분이나 질기긴 마찬가지라는 말. 어차피 인생 뭐 없지만, 그래도 술병 속에서 ‘머리통만 주먹만 하게 불어서 둥둥’ 떠 있는 것보다는 ‘한 방울의 육즙도 남지 않을 때 대궁을 부풀리며 자진’하는 양파 쪽이 훨씬 멋지다는 생각에 한 표!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