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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64|울음이 타는 강|박재삼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64

 

울음이 타는 강

                                박재삼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가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강을 처음 보것네.




 

해질 무렵 가을 강변에 홀로 서 본 적 없는 그대여, 그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내일이 막막하고 오늘이 지겹거든 그대여 한 번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바라볼 일이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게 어디 청춘뿐이겠는가? 회한뿐이겠는가? 강이 멀거든 근처 물 마른 샛강에라도 나가 수런거리는 억새의 품이라도 들춰보자. 거기, 유년의 그대가 숨어있을 지도 모를 일이니……. 돈이 없어 중학교에 가지 못한 가난한 소년 박재삼(朴在森). 삼천포 여중 사환을 하다 김상옥 선생을 만나 시를 알게 되고, 대학도 가고 시인이 된다. 시인이 되어 다시 저무는 강 앞에 섰을 때, 가난은 여전히 그의 옷깃을 적시고 있었을 것이다. 반신불수가 되어 또다시 저무는 강 앞에 섰을 때도 곁엔 가난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어쩌랴, 눈물에 젖으나 강물에 젖으나 시인이 되어 남았으니 마냥 젖은 채로 저물어갈 수밖에.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