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을 주는 시-68
비 오는 날
천상병
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 내린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1백 50원을 훔쳐 아침 해장으로 나간다.
막걸리 한 잔 내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냐?
가방 들고 지나는 학생들이
그렇게도 싱싱하게 보이고
나의 늙음은 그저 노인 같다.
비오는 아침의 이 신선감(新鮮感)을
나는 어찌 표현하리오?
그저 사는 대로 살다가
깨끗이 눈감으리오.
목 여사님(목순옥)도 남편 따라 하늘로 돌아가시고, 비 오는 날 인사동 〈귀천〉은 적요하다. 새 주인은 모르겠고, 비 맞은 우산만 탁자 밑에서 한 시름 젖어 있다. 만약 천당 가는 통로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면, 아마도 손바닥만한 〈귀천〉 같은 곳은 아닐까. 150원은 몰라도 150억으로 막걸리 한 잔 마시긴 어렵지. 천당 가는 일도 마찬가지일 테고. 어차피 죽으면 많아야 한 평, 끽해야 한 줌인 것을……. 내곡동은 어림도 없을 거야.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