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림을 주는 시 한 편-76
백화점 가는 길
최영미
내 욕망의 절반은
백화점이 해결해 준다.
식품관은 지하에,
화장품은 일 층에,
청바지는 이 층에,
구두는 삼 층에,
침대는……
전 세계가 모인 곳,
미국과 유럽의 상점에서도 진열되지 않은
내 욕망의 나머지 절반은
그가 채워 주리라, 믿으며
십 년을 이십 년을 기다렸다.
오지 않는 너.
그를 기다리며,
그에게 발견되고파,
치명적인 향기를 수집한다.
샤넬 디오르 아베다……
갖고 싶어서,
갖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사지 못한 불안한 오후.
샴푸는 일 층에,
청바지는 이 층에,
구두는 삼 층에,
그이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쯤 가고 있을까?
우리는 소비를 통해 존재를 증명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구를 지배하는 거대 자본들은 우리의 소비를 통해 몸집을 불려나간다. 그들은 소비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거나, 미래의 소비를 위해 밀가루를 공짜로 공급해 주기도 한다. 하여 인간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생산하기를 포기할 때, 그들은 도둑과 같이 찾아온다. 그때, 우리가 팔아먹을 것은 양심밖에 없다. 우리는 소비의 노예가 되고, 모든 상품과 재앙은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건너올 것이다. ‘아무것도 사지 못한 불안한 오후’를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마트에 들어가 밤늦도록 카트를 굴리며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다. 마치 그것이 행복의 결정판인 것처럼, 생을 소비하는 줄도 모르면서 바구니를 채우는데 여념 없다. 삽질을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던, 주구장천 FTA만 외치며 바구니를 채우던 사람도 머지않아 자신이 건설한 콘크리트 감옥 속으로 속절없이 사라질 것이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