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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9 |산수유꽃 |신용목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9


산수유꽃

신용목


데인 자리가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저를 바람 속으로 돌려보내기 전 가끔은 돌이켜 아픈 자국 하나 남기고 가는 저 뜨거움
물집은 몸에 가둔 시간임을 안다

마당귀에 산수유꽃이 피는 철도 독감이 잦아 옆구리에 화덕을 끼고 자다 나는 정년(停年)이 되어 버렸다

노비의 뜰에나 심었을 산수유나무
면도날을 씹는 봄 햇살에 걸려 잔 물집 노랗게 잡힐 적은 일없이 마루턱에 앉아 동통을 앓고 문서처럼 서러운 기억이 많다

한 뜨거움의 대를 유배시키기 위해 몸이 키우는 물집 그 수맥을 짚고 산수유가 익는다고 비천하여 나는 어깨의 경사로 비탈을 만들고 물 흐르는 소리를 기다리다 늙은 것이다

시간의 문장은 흉터이다 둑 위에서 묵은 편지를 태웠던 날은 귀에 걸려 찢어진 고무신처럼 질질 끌려 다녔다 날아간 연기가 남은 재보다 무거웠던가
사는 일은 산수유꽃빛만큼 아득했으며

나는 천한 만큼 흉터를 늘리며 왔고 데인 데마다 산수유 한 그루씩이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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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에 화사하다, 라는 수식을 즐겨하는 당신이라면 당혹스러울 시이겠지요. 그러나 어디 이면이 화사하기만 할까요. ‘산수유꽃’이라는 제목을 무심한 듯 붙여놓은 시인이, “데인 자리가 아물지 않는다”고 중얼거립니다. 봄은 “돌이켜 아픈 자국 하나 남기고 가는 저 뜨거움”과의 대면이지요. 저마다의 “물집은 몸에 가둔 시간임을” 우리는 종종 잊습니다. 바야흐로 “마당귀에 산수유꽃이 피는 철”. 마음의 “독감이 잦”은 얼굴들이 떠올라요. 오늘날 “노비의 뜰에나 심었을 산수유나무”의 꽃구경을 관광이라 부른다면, 아직도 열매의 씨를 발라내느라 검게 물든 손마디는 뭐라 불러야 할까요. 기억이 “데인 자리”라면 “시간의 문장은 흉터”일 것. “사는 일은 산수유꽃빛만큼 아득”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데인 데마다 산수유 한 그루씩이 자”라는 삶의 생장은 저리 싱그러울까요. 봄과 꽃, 노란 현기증의 시간.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