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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쓰는 편지 16 |물 통(桶) |김종삼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16


물 통(桶)

김종삼

희미한
풍금(風琴) 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 아닌 인간(人間)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桶)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머나먼 광야(廣野)의 한복판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
하여금 따우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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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희미한/풍금(風琴) 소리”로부터 시작됩니다. 문제는 그 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는 것. 인생의 불연속성을 떠올린다면 해석주의자의 병일까요. 이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묻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고 말이지요. 막막한, 혹은 먹먹한 질문에 나는 대답합니다. “다름 아닌 인간(人間)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桶)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그토록 찾아 헤매야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우리는 모두 무엇일까요. 요즘 우리는 꽃도 초록도 없는 늦봄을 견디고 있습니다. 차라리 눈 감았다고 해야 옳겠지요. 그런가하면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는가”(요세프 브로드스키) 절규하는 시인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의 시인은 ‘인간 찾기’ 여정에 대해 고백하고 있지요. 이제 우리는 “머나먼 광야(廣野)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시작도 끝도 아닌 한복판이라 다행일까요 불행일까요. “얕은/하늘 밑으로/영롱한 날빛으로/하여금 따우에선” 견디는 수밖에, 끝내 애정으로 몫을 다하는 수밖에,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