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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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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초등학교 때 배운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의 시조이다. 나 뿐 아니라 ‘동창이 밝았느냐’만 들어도 남이든, 북이든, 해외이든 우리 민족 모두가 뒤따르는 시 구절을 쉽게 떠올리고 욀 수 있는 국민시조이다. 저 단군조선 이래 우리 역사에서 이 시처럼 친숙하고 널리 읊조려지고 있는 시도 드물다.
시조는 반만년 내려온 우리 민족의 삶과 언어, 그리고 사상과 정한(情恨)이 3장 6구 45자 안팎의 틀에 담긴 정형시, 민족문화의 원형이다. 3,4,3,4로 나가는 운율은 우리가 일상 쓰는 말의 걸음걸이 같아서 익숙하다. 3장 6구 구성은 퍼질러만 놓고 마무리는 못하는 일본의 하이쿠 등 2장 구조와는 달리 확 싸매버리는 종결감이 있어 안정적이고 그윽하다.
해서 시조의 운율은 우리 핏속에 반만년 유전돼온 민족의 맥박이다. 이런 시조가 있어 우리는 아무리 고된 일상에서도 삶과 사회와 인간의 본분을 둘러보며 제자리를 찾게 할 수 있었고 또 그 속에서 삼라만상과 함께 사는 풍류(風流)도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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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모현면 초부리 바로 앞산에 남구만 묘소가 있다. 의령남씨 문충공파 종중이 선조의 음덕으로 날로 흥한 탓일까. 신라나 가야 옛 왕릉 같은 구릉에 보란 듯 지극정성을 다해 아주 잘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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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을 둘러보고 찻길을 건너 남구만이 말년에 21년 간 거주했던 파담마을의 우산정사와 용인팔경으로 꼽히는 비파담을 둘러봤다. 경안천이 흘러들어 나가는 비파 같은 호수와 호수에 어리는 산 그림자를 바라보며 남구만은 또 얼마나 많은 시문(詩文)을 구상하고 지었을 것인가. 신위와 영정을 모시고 생전에 남긴 서화(書畵)도 함께 전시한 사당을 둘러보며 그렇게 나랏일 하면서도 시서화에도 두루 절정을 이룬 남구만의 예술혼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남구만은 1629년 태어나 1651년 과거에 급제해 이른 나이에 벼슬길에 나갔다. 함경도관찰사, 병조판서, 대제학, 우의정 등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그 소임을 다해 영의정까지 올랐다. 남인 소인, 노론 소론 간의 당쟁 속에서 강릉으로 유배돼 1년 여간 지금의 동해시에 살기도 했다. 1711년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82세까지 장수하다 타계하자 숙종은 문충공(文忠公)이란 시호를 내리고 나라에서 경기도 양주 불암산에 국장으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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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곳의 외직(外職)과 유배로 팔도를 두루 둘러봤을 남구만이 말년에 택한 곳이 용인. 살아서도 죽어서도 천하의 명당이 용인인지라 집안에서 적극 나서 10년 만에 양주에서 이곳 초부리로 모셔온 것이다. 이렇게 명당인 용인에서 남구만이 20여년을 보내며 시문을 짓고 묻혔는데도 남구만을 기리는 문학축제가 다른 지역에서 더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다니 용인시민으로서 창피하고 자존심 상해 통탄할 노릇이다.
유배당했지만 지역민 잘 보살피며 보내다 단 1년 여 만에 풀려나 떠난 곳. 지금의 강원도 동해시가 남구만과 ‘동창이 밝았느냐’를 지역 브랜드화 해 ‘전국시조경창대회’를 열고 창작의 무대라며 시조테마관광지로 내세우는 등 시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으니. 동해(東海)여서 ‘동창(東窓)이 밝았느냐’이고, 장전(長田)이란 지명이 있어 ‘사래 긴 밭’이라 주장하면서 말이다.
‘아침이 밝고 신선하다’는 조선(朝鮮)이란 명칭, 지금도 극동(極東)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는 이미 동창이 들어있는 것 아니겠는가. 더 확실한 것은 파담마을 재 넘어 갈담리에 와서 보시라. 지금도 봄날 하늘 높이 치솟는 종달새 우짖는 소리 아래 소 한 마리로는 몇날 며칠 갈아도 모자라게 길게 펼쳐진 황토 흙 그 사래 긴 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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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휴 종중회장 |
앞서 살폈듯 시조는 우리 민족문화의 원형이고 나아가 인간으로서 변해서는 안 될 마음을 다잡아주는 항심(恒心)의 고향이다. 정처(定處)없이 떠도는 이 글로벌한 신유목 사이버 시대에 정처를 잡아 영원한 고향을 돌려주고 있는 것이 시조이다. 2000여 시조시인들이 활동하며 오늘의 현대시를 시답게 이끌고 있는 것이 시조이다.
남구만문학상을 제정해 남구만처럼 인간과 사회의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실현한 빼어난 시와 시조에 수상한다면 우리 문학을 건전하게 이끌 수 있고 사회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다운 사람들이 사는 도시, 용인시 이미지를 드높이는 복덩이가 될 것이다. 이후 형편에 맞는 추모 사업을 품위 있게 펼쳐나간다면 그 복덩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이런 복덩이를 언제까지 다른 동네에 안겨줘야만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