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이 있어야 더 환한 꽃세상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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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햇살 좋은 날 봄이 얼마만큼이나 왔나 까마귀봉으로 올라가보았다. 초부리 우리 마을을 금계포란(金鷄抱卵) 형세로 감싼 낮은 산자락의 닭 머리격이 까마귀봉이다. 더 높은 산 높은 하늘로 날아오려는 까마귀들이 둥지를 튼 곳이라 그리 불렸을 것.
날이 풀려서인지 그곳에서 마을로 내려와 춘정(春情) 넘치는 소리로 울며 졸라대는 까마귀 울음이 나를 산으로 이끌었다. 산속에 들어가니 소나무며 참나무 사이에서 봄의 전령이라는 생강나무 꽃들이 노랗게 한창 피어오르고 있었다. 양지바른 산등성이에는 진달래꽃도 무더기 무더기 피어있었다.
게으른 주인만 쳐다보며 더디고 더딘 내 집 앞뜰 꽃나무들보다 산중에서는 저들끼리 알아서, 협동해서 서로서로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이른 봄 노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꽃이 다 산수유만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봄에야 알았다. 흐드러진 산수유보다는 더 몽글몽글 꽃을 피우고 나무줄기도 더 잿빛 칙칙한 게 생강나무 꽃이란 걸.
사철 푸르러 솔바람 소리마저 시리고 추운 소나무 아래서, 잎 다져 푸석푸석한 밤나무며 도토리 상수리나무 사이 사이에서 생강나무들이 온 몸으로 죽을힘을 다해 몽글몽글 꽃숭어리들을 내밀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튼실한 꽃대궁도 없이 온몸으로 죽은 듯한 잿빛 줄기며 가지에 꽃을 내밀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봄바람에 하늘거리지도 않고 봄이 왔음을, 살아있음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었다. 그런 산수유를 바라보며, 보듬으며 이렇게 시상(詩想)을 정리해보았다.
황사 미세먼지 스모그 속 산수유 개나리
샛노란 봄 어른거린가 했더니
가만히 들여다보니 생강나무 몽실몽실 꽃 피워
기어코 봄을 부르고 있데
여린 햇살 어엿한 꽃대궁도 없이
맨 꽃으로 제 몸뚱어리 불거져 나와
잿빛 가지 가지 온통 꽃숭어리로 피워 올리는
저, 저, 묵언의 화엄(華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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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아뿔사, 또 생각의 아집(我執)이라니’라며 혀를 찼다. 오는 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맞이하지 못하고 또 생각의 봄만 맞으며 이 찬란한 화엄의 봄세상을 또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지. 자신의 몸통을 아프게 뚫고나와 온몸으로 봄을 맞고 증거하고 있는 묵언의 생강나무 꽃 앞에서 다시금 반성했다.
그래 생강나무 꽃 앞에서는 그만 내 생각을 접고 생강나무는 생강나무로 돌려주기로 했다. 누가 누구를 강제하지 않고 제각각 피어올라 제 향기와 제 모양으로 함빡 즐겁고 아름다운 무등등(無等等)한 세상이 화엄세상, 꽃 세상 아니겠는가.
‘까악, 아아악, 까르르’ 까마귀 울음이 생강나무 꽃 앞에서 그런 생각마저 끊게 하고 까마귀봉에 오르게 한다. 올랐더니 봉우리 가득 진달래꽃 세상이다. 봉우리 위에 세워진 고압선 철탑 아래에도, 철탑 옆 이장(移葬)한 묘지 터에도 선홍빛 진달래꽃 무더기 무더기이다.
그 꽃을 바라보는 순간, 까마귀 울음소리가 겹치며 이 진달래꽃들은 고압선 철탑에 둥지를 앗긴 까마귀들의 울음, 피토하듯 울어대던 그 울음이 피운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도 고압선 전류에 못 견디고 이장했으니 까마귀들인들 오죽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4월만 되면 써먹곤 하는 그 흔한 수사(修辭) ‘4월은 잔인한 달’이란 말이 떠올랐다. T.S.엘리어트가 5부작 장시「황무지」1부 ‘죽은 자의 매장(埋葬)’ 시작부터 대뜸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워내니”라고 한데서 따온 것이니 이장한 묘지가 진달래 꽃밭이 된 것을 보고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러나 아서라. 언제까지 저 서구의 구역질나는 패러독스에 우리네 가없는 삶과 봄을 내줘야할 것인가. 안팎 없는 우리네 삶을 매정하게 재단해버리는 극명하게 반대되는 그 역설의 혓바닥에. 꽃도 저리 햇살 그늘져야 더 환하고, 둥지 잃어 그늘져서 저 까마귀 울음도 더 구성진 것을. 빛과 그림자 다 껴안고 눙치며 깊어가고 환히 피어오르는 게 봄이고 굽이굽이 서럽고도 아름다운 우리네 삶의 깊이요 실상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