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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철 시인의 초부리시첩

그냥 걸으세요, 삼라만상과 속 깊이 어우러질 테니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 그냥 걸으세요삼라만상과 속 깊이 어우러질테니
오늘도 걷는다. 집에서 초부리 버스정류장까지 20여분. 시내에 나가려 그 길을 걸어서 오간다. 도중에 간혹 차 몰고 다니는 마을 분들을 만나면 한사코 정류장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그 호의를 감사히 거절하곤 한다. 걷고 싶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걷기가 대세가 됐다. 시내 공원에서는 새벽이거나 낮밤이거나 걷는 사람들로 붐빈다. 빨리 걷기로도 부족해 팔 활개 치며 파워 워킹 하는 사람들도 많다. 시내 공원은 워킹족에게 점령당한지 오래.

달리기나 근력 운동보다는 걷기가 살빼기나 성인병 예방에 좋기 때문이란다. 걸으면 뇌에 혈액과 산소를 잘 보내줘 머리도 신선하게 잘 돌아간다. 산을 에둘러 걷는 길들도 무슨 둘레길이란 이름으로 계속 생겨나며 심신의 건강을 돌보게 하고 있다.

그러나 난 그런 운동으로서 걷는다기 보다는 산보로 걷는다. 일본식 한자라서 피하고 있는 ‘산보(散步)’라는 말에는 걸음을 흩트린다는 그 ‘散’이란 뜻이 제대로 살아있어 좋다. 산보라는 말에서는 우선 어릴 적 설fp이던 소풍(逍風)이 떠오르고 나이 들며 가슴속에 차오른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라는 글 제목 석 자의 뜻이 아득히 떠오른다.

물고기 알만큼 작은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그것이 변해 새가 되면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모르는 붕(鵬)이 된다는 우화가 있는 소요유. 거닐 逍, 멀 遙, 놀 遊 자처럼 아무 책략 없이 그저 노닐 듯 거닐면 눈곱만큼 작은 물고기도 하늘을 덮을 만큼 큰 새가 되어 시공(時空)을 뛰어 넘어 날 수 있고, 무위자연으로서의 자아의 본성과 큰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세 글자의 뜻이고 산보의 깊고 넓은 의미 일 것이다.

해서 난 시내에 나가기 위해 걷는다기 보다는 그저 산보로서 걷는다. 그렇게 걷는 시간은 분초를 다투는 일상적 시간이 아니라 태초의, 순환되는, 영원한 시간이다. 그런 시간을 걸으며 나는 주위의 풍광과 온몸으로 어우러지길 바란다.

그렇게 걸으며 요즘 난 동구 어귀 여울목 다리 건너 서 있는 자귀나무에 홀리곤 한다. 어디 먼 나라에서 온 식물인 듯한 그 나무에 요즘 고생대에서 온 듯한 꽃이 한창이다. 짙푸른 나뭇잎 위에 꽃밭침도 없이, 꽃잎도 없이 암술과 수술이 알몸으로 연분홍 비단실처럼 피어오르는 꽃. 푸른 바다를 순풍에 돛달고 항해하는 아라비아의 젊은 공주와 왕자의 로망.

자귀나무 꽃에서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관현악곡 ‘세헤라자데’가 흘러나온다. 김연아 등 피겨선수들이 꿈꾸듯 황홀한 자태로 미끄러지며 연기할 때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주제 선율이 자귀나무 꽃에서는 온몸으로 전해진다.

고교시절 교정 잔디밭에 자귀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초여름 밝은 햇살아래 스프링클러가 연신 물을 뿜어대며 피어오르는 무지개처럼 자귀나무 꽃이 피었다. 그 꽃을 바라보며 우정, 사랑, 그리움 등 설익은 추상(抽象)의 낭만적 목록들을 가슴 가득 떠올리곤 했었는데. 지금 이 나이에도 동구 어귀에 서 있는 그 나무 그 꽃을 보고 그런 비릿한 추상에 젖어들고 있는 것인가.

울울창창 길 밖까지 기어 나온 칡덩굴 순을 따 다 허물어져가는 이빨로 씹어본다. 비릿한 엽록소 내음이 입 안 가득 쌉쌀하게 번진다. 앞뒤 산 뻐꾹, 뻐꾹새 울음소리에 올 여름도 익어 가는데 나는 여직도 그 비릿한 낭만의 창고만 뒤적이고 있다니.

환한 햇살 속 먹구름 같이 씁쓸한 그때 해오라기 한 마리 넓은 날개를 펴고 여울목에 내려않는다. 마른장마 속 간밤에 내린 소나기 한 줄금에 물이 분 것인가. 여울물목 소리가 제법 힘차다. 물목 거슬러 오르는 작은 물고기를 낚아채려 함인가. 해오라기가 예의 외다리 명상으로 물속을 꼬나보고 있다.

 

 

 

머물지 못하는 봄이어도 좋아라.

초록 아니어도, 낙엽으로 흩어져도, 선채로 얼어붙어도 좋아라.

아직은 다 내주며 이리 여울져 흘러도 좋아라.

여울목 가는 다리 목 빼고 하얗게 기다리는 너,

아직은-

 

 

 

그래, 다 떨어진 이빨의 이 나이에도 오래된 사춘기, 청춘의 낡은 창고만 뒤적이고 있어도 좋을 것이다. 튼실한 집 한 채 짓지 못하고 이리 여울져 흘러도 좋을 것이다. 우주만물 삶들이 다 내주며 흐르고 흐르는 것들일 진데 무얼 그리 집착하고 이루려하는 것인가. 한줄기 길 위에서 이리 시공도 없이 어우러져 흐르는 것 자체가 삶이란 걸 걸으며 문득문득 온몸으로 깨닫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