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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67 l 한 사람이 있는 정오 l 안미옥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7


한 사람이 있는 정오

안미옥


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낡은 소파가 필요하다

길고 긴 골목 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지나가려고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복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진심을 들킬까봐 겁을 내면서
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
구름은 구부러지고 나무는 흘러간다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다

맨 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나는 더 어두워졌다

어리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
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수밖에 없겠지

찌르는 것
휘어 감기는 것
자기 뼈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더라고 다시 넘어지는 무릎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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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숨 막힌다는 느낌은 꼭 기온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젊은 시인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듯, 당신은 지쳐가고 있지 않나요. 아니면 두려워하고 있지 않나요. 도처에 “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시 우리는 두려움조차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진심을 들킬까봐 겁을 내면서/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말이지요. 누군가 말합니다.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던 주체는 그 말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나, 라고 중얼거리다 “맨 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자문하지만 부질없습니다. 어둠과 고독만이 무럭무럭 자라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수밖에 없겠지”라는 문장을 다음과 같이 읽겠습니다. ‘영영 나의 마음이어서 다행이다, 라고 말이지요. 깨진 무릎으로라도 구해야 할 것은 ‘마음’이라는 사회학.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