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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69 l 여름 한철 l 도종환

시로 쓰는 편지 69

여름 한철

도종환

동백나무 묵은 잎 위에
새잎이 돋는 동안
아침 창가에서 시를 읽었다

난초잎이 가리키는 서쪽 산 너머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바로 세우지 못한 나랏일에 마음 흐렸다

백작약 뿌리를 다려 먹으며
견디는 여름 한철

작달비 내리다 그친 뒤에도
오랜 해직 생활에 찾아온 병은
떠날 줄을 몰랐다

여름밤 깊고 깊어 근심도 깊은데
먼 마을의 등불도 흔들리다 이울고
띠구름 속에 떴다 지는 까마득한 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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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에 ‘여름 한철’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여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한 사람이 아침을 맞아 새잎 돋는 소리를 들으며 시를 읽었답니다. 저녁에는 노을 앞에서, “바로 세우지 못한 나랏일에 마음 흐렸”음을 고백하고 있네요. 마음이 흐려지면 몸은 덩달아 무거워집니다. 이를 다스리기 위해 백작약 뿌리에 기대어 보기도 하고요. 작달비가 시원스레 내려도, 삶의 이력이 가져다준 병은 떠날 줄 모르나 봅니다. 시인의 산문을 함께 읽다 밑줄을 그었습니다. “충분히 사유할 시간 없이 쫓기던 삶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를 스쳐지나갔던 시간들을 바라봅니다. …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삶의 속도를 늦추고 내 삶을 바라봅니다. 내실이 없는 허세와 과장이 많았습니다.”(「청안한 삶」) 이처럼 시인은 각자의 삶과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대면하기를 요청하고 있지요. 여름밤이 깊어갈수록, 근심이 깊어질수록 ‘까마득한 별’ 하나 반짝일 것을 믿으면서.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