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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70 l 다섯 개의 계절 l 박진성

용인신문-시로 쓰는 편지 70

다섯 개의 계절

박진성


계절이 다섯 개가 있다면 한 계절은 죽어 있어도 된다면 나는 너의 무덤에 있을 거야, 네 번째 계절이 끝나는 곳에 나무를 떨어뜨릴 거야 감정 노동자의 감정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리고 초록이 지겨운 초가을의 나무들을 닫을 수 있다면 다섯 번째, 다섯 번째, 자, 이렇게 시간은 흐른다,

나무들이 맹목을 버린다면 우릴 쳐다보는 모든 눈동자들이 흰 자위만 남는다면 구름처럼 구름 아래의 구름처럼 아래의 아래의 …… 빙빙 도는 새들이 떨어진다면 아이들이 갑자기 노는 일을 중단한다면 다섯 번째, 다섯 번째 꿈이 시작된다 잠들 수 있다면 쫓기고 있어요, 네 꿈의 창백한 환자가 내 꿈으로 이동한다면 안아줄 텐데

자신이 가여워서 우는 사내를 네가 본다면 없는 죄를 만드는 사내의 입술을 본다면 말의 힘줄과 말의 불안과 말의 꽃들을 네가 밟는다면 다섯 번째 계절엔 병원이 없을 텐데 안녕 지하실들아 모든 시간들이 모이는 바닥들아 네가 그곳에 눕는다면 …… 너의 아래를 기어다닐 수 있다면 시간이 사라질 텐데 날씨가 악기가 될 수 있을 텐데 악기의 북쪽으로만 만든 음악일 텐데 계절이 다섯 개가 있다면

그렇게 죽어 있어도 좋아 죽은 말들만 모아 일기를 써도 좋아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책을 물고 너의 해안으로 모든 물고기들이 몰려들 텐데 가라 앉으리라 가라 앉으리라 떨어지는 먼지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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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모두 무탈하신지요. 문득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대해 떠올려 봅니다. 요즈음의 날씨를 돌아보면 여름과 아주 더운 여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시인이 들려주는 ‘다섯 개의 계절’은 어떠할지 궁금합니다. 여기서의 계절은 꿈꾸기와 연관이 있습니다. 또한 시간이 사라진 세계와도 닿아 있고요. 날씨가 악기 소리를 내는 공간도 자리합니다. 시공의 초월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시인은 시집 『식물의 밤』표지글에서 “어떤 문장은 모든 시간일 수 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때의 모든 시간은 가장 중요한 찰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적 주체는 ‘다섯 개의 계절’이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곳에서 ‘죽어 있어도 좋아’라고 말합니다. 아주 더운 여름을 건너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문장은 무엇일까요. 더불어 사회를 굴절시켜 반영해 본다면 어떠한 질문이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죽어 있어도 좋아’가 아닌 ‘살아 있어도 좋아’라는 말은 너무 멀리 있고.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